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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그 자리와 내 자리가 다르지 않다는 연대의 마음으로...

  *2022년 11월 1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많은 비밀들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려 한들 삶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는 것을 안다. 그 틈을 채우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p.31)


  논리 정연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란 참으로 힘겹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러한 느낌은 더더욱 강해진다. 세상사에 통달한 것 같은 말의 성찬이 있되, 선뜻 손이 가는 말은 오히려 없다. 상식이라는 것이 통용되던 시절은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하기도 힘들다. 이제는 하찮고 작은 단위에서조차 모두에게 같은 잣대로 들이밀만한 상식이라는 것이 남아 있는지 의심스럽다.   


  “...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p.59)


  그렇다고해서 무법천지와도 같았던 어느 시절이 그립다, 라고 외칠 지경은 아니다.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수렁으로의 추락을 목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겠지,  믿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어제도, 인간이 미운데 나도 인간이고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데 나는 겨우 인간이구나 한탄하면서, 인간이라는 모멸감을 견뎌야 한다, 라고 속엣말을 게워냈지만 그래도 견뎌보려고 하는 중이다. 


  “... 완벽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게으름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완벽한 것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결국 그 누구도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속삭임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들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짱 끼고 앉아 ’당신은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당신의 행동들은 결국 무의미해‘라고 먼 곳에서 지적만 하는 건 언제나 너무도 쉽다.” (p.71)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는 작고 모자라고 허약한 것들을 향하여 보내는 연민이 가득하다.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진, 그래서 더없이 메마르고 외로운 최근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 기대고 싶고 연대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만들어갈 수 있었다. 베풀어진 호의로 얻은 연대가 아니라 그 자리와 내 자리가 다르지 않다는 연대의 마음 같은 것...


  “오늘 아침 창밖엔 사늘한 빛이 설핏하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은 사물들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데우기 위해 전기난로는 켜고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신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떨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부드럽게 게을러도 괜찮은 겨울의 끄트머리다.” (p.193)


  빈곤 포르노, 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코스프레의 대상으로 소환된 오드리 헵번은 죽어서도 소란스럽다 여길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검찰 간부의 아내쯤으로 자신의 목표를 포지셔닝하고 착실하게(?) 허위의 이력을 쌓아 올렸을 것이다. 그 이력이 지금의 자리와 어울리지 않음을 그녀도 잘 알 것이다. 대선 전 공개된 녹음에서 그녀는 딱 자신의 상식선에서 세상만사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자리는 그녀의 말과 행동을 아예 상식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 뉴스를 보면 볼수록 나라 안팎으로 혐오와 폭력이 득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그럴 때는 나도 허무와 좌절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혐오나 폭력만큼이나 허무와 좌절에 빠지는 것 역시 너무나도 손쉬운 해결책이란 걸 아니까, 그럼에도 또다시. 이럴 때일수록 이 봄엔 희망에 대해 조금 더 말하고 싶다. 희망은 더디게 피어나는 꽃이니까...” (p.215)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또다른 허위의 이력을 쌓는 대신 허위의 마음을 사진으로 찍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그녀의 남편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세상일에 문외한 인 것처럼 나는 그녀 또한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나름 순수하다(?)고 여기고 싶다. 세상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반전도 있다. 자꾸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전시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연대하는 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불가능해보이는 나의 희망이다.



백수린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창비 / 229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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