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밝게 보고자 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세상의 이치를 밝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주명리학은 하늘의 이치를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언어로 풀이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배어 있다. 사주명리학은 보통 당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며, 송나라의 서자평에 의해 집대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운명의 이치를 따진다는 의미에서 명리학이라고 불리우지만, 일본에서는 운명을 추리한다고 하여 추명학으로, 중국 특히 대만에서는 운명을 계산한다는 의미에서 산명학으로 불리운다.
“사주팔자가 반란사건과 관련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명리학 자체가 계급차별에 대항하는 대항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더라도 사주팔자만 잘 타고나면 누구나 왕이 되고 장상이 될 수 있다는 기회균등 사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주명리학은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일종의 미신으로 치부되며 사람들로부터 멀어져갔다. 양지에서 학문의 노릇을 하던 사주명리학은 미신으로 치부되며 음지로 숨어들어야 했다. 사실 책의 저자인 조용헌은 이렇게 음지로 숨어들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는 사주명리학의 줄기를 탐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은 자, 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사주명리학적 전통이 복원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 탄허는 불교승려이면서도 유(儒), 불(佛), 선(仙) 삼교(三敎)를 아울러 포용하는 포함삼교(包涵三敎)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포함삼교’는 신라 말의 최치원이 한 말이다. 최치원 이래로 한국의 정신사는 유교 하나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교만 가지고도 되는 게 아니다. 삼교를 모두 알아야만 전체를 볼 수 있다... 유교로부터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를 배우고, 불교는 마음의 구조를 밝히는 명심(明心)의 이치를, 선교로부터는 몸을 다스리는 양생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작가는 서양의 근대 사상에 치우쳐 있는 그래서 왜곡되어 있기도 한 우리 근대의 사상적 기반을 우려하면서 동시에 유불선이 함께 하는 우리의 전통에 대해 설명한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고려되어야만 하는 사상의 전통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주역과 사주 또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에 대한 조금 다른 방법론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도 있게 된다.
“... 『주역』으로 어떤 사람의 점을 쳐볼 때는 ‘지금 당장(now and here)'만 필요하지만, 사주로 볼 때는 그 사람의 년, 월, 일, 시가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주역』은 점치는 순간(時)을 중시하지만, 사주는 시(時)뿐만 아니라 년(年)도 필요하고 월(月)과 일(日)도 알아야 한다. 주역이 OX 방식이라고 한다면, 사주는 사지선다형이라고나 할까. 주역이 디지털시계라면 사주는 아날로그시계이다. 주역이 시(詩)라면 사주는 산문(散文)이다. 주역이 압축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 장점이 있다면, 사주는 서사적인 전망을 하는 데 유리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방외지사들에 대한 소개를 통하여 알기 쉽고 재미있게 사주명리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주명리학을 포함하여 풍수와 한의학까지를 묶은 ‘강호동양학’을 주창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을 구현해내는 3대 과목으로 사주와 풍수와 한의학을 들고 그 각각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 강호동양학을 구성하는 3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사주, 풍수, 한의학은 천, 지, 인 삼재사상(三才思想)의 골격에 해당되고도 한다. 천문이란 바로 때(時)를 알기 위한 학문이다... 자시 인생이 지금 몇 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하여 한자 문화권의 역대 천재들이 고안한 방법이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天文)을 인문(人文)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리는 풍수이다. 천문이 시간이라면 지리는 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짝은 공간이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령(地靈)의 문제이다. 당에는 신령스러운 영(靈)이 어려 있다고 믿는다... 천문, 지리 다음에는 인사(人事)이다. 인사는 존재이다. 시간과 공간이 있어도 존재가 없으면 소용없다.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분야가 한의학이다...”
(조금은 오만하다고 여겨지는) 인간 중심의 서구적 합리주의가 아직도 대세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내면서 이러한 사상이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 또한 충분히 느꼈다. 어쩌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구’,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파악하는 동양적 방법론은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주명리학 또한 그러한 방법론의 한 켠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조용헌 /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 생각의나무 / 351쪽 / 2010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