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Sep 16. 2024

박인제 감독 <모비딕>

정부 위의 정부가 아니라 정부 안의 정부, 그래서 밝힐 필요가 없는 고래

  영화가 시작되고 자막이 먼저 뜬다. 허먼 맬빌의 모비딕에 (허먼 맬빌의 <모비딕>은 예전에는 대부분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나오는 내용인데, 말인즉슨 모비딕에서 고래와 싸우던 이들은 자신들이 싸우는 것이 흰 고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막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듯 영화 속 황정민은 (상상 속에서, 꿈 속에서던가) 가끔 바다밑으로 내려가 거대한 고래의 한 켠을, 의미심장한 얼떨떨함으로 뒤지고 다닌다.


  영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건은 1994년 11월 20일 서울 근교에 있는 발암교 다리가 폭발하는 사건이다.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치자면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1년 6개월이 흐른 시점이 그 시간적 배경이다. (사실 문민정부는 그야말로 대형 사고의 백화점 같았는데, 1994년에는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있었고, 1995년에는 대구 지하철1호선 가스폭발사고, 그리고 문민정부 사고리스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다.)


  그렇게 발암교 폭발 사고가 있은 이후 신문기자 이방우에게 동네 후배인 윤혁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꼬여가기 시작한다. 발암교 폭발 사고 취재를 통해 다시 한 번 특종의 영예를 안고 싶어하는 이방우에게 윤혁은 알 듯 모를 듯한 메시지를 남기고, 곧이어 특종의 냄새를 맡은 이방우가 그 뒤를 캐기 시작한다. 여기에 특종을 잡아서 지방으로부터 중앙으로 진출한 손진기 기자, 그리고 이방우의 기자 후배인 공대 출신의 성효관이 하나로 뭉치면서 발암교 폭발 사고의 배후를 향해 서서히 접근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부 위의 정부의 존재를 믿고 있던 손진기가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되고, 손진기의 말에 코웃음을 치던 이방우가 이제는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 사이 발암교 폭발 사고는 북한의 테러 행위로 밝혀지지만, 사실 정부 위의 정부는 발암교 폭발 보다 더한 또다른 사건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 이방우의 레이더에 포착된다. 그리고 드디어 이방우는 돌아가는 윤전기를 세우면서,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 그 거대한 실체를 알 수없는 이들과의 한 판 싸움을 진행한다.


  사실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는 (음모론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을 하였다는 점에서 성공이지만 시나리오나 연출에서는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심심치 않게 노출된다는 점에서) 영화 <모비딕>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재미는 영화 속 사건을 보면서 실제하는 현대사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이에게는 완전한 허구로 느껴질 수 있는 영화 속 사건들이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온 나에게는 좀더 찐득찐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암교 폭발 사고를 보면서 성수대교 붕괴를 떠올리게 된다거나 (이와 함께 그 사고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는 것은 왠지 석연찮은 점 투성이인 천안함 사건도 떠올려지고) 신문기자 이방우에게 플로피 디스크를 전달하는 윤혁은 마찬가지로 디스크를 들고 나와 양심선언을 한 보안사 (현재의 기무사의 전신인 군 정보 기관) 출신의 윤석양 이병이 오버랩되고 (물론 영화에서는 고래 마크를 가진 사조직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도청을 당하는 이방우의 전화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부산 초원 복집 도청 사건이 떠올려지는 식이다.


  여기에 사찰을 당하다가 끌려가서 결국 발암교 폭발의 현장에 있게 되는 운동권 학생을 보면서는 안성 캠퍼스 총학새회장 출신으로 전남 거문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이내창 사건이 떠올랐고, 유서를 조작하는 정부 위의 정부를 보면서는 김기설씨 유서를 대필하여 자살을 도왔다는 누명을 썼던 강기훈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정부 위의 정부의 비행기 폭발 계획은 김현희에 의한 KAL기 폭발 사건과 은연중에 매칭되는 것이다.


  사실 어느 네티즌이 쓴 리뷰 글에서 모비딕에 결국 고래는 없었다, 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결국 고래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비행기를 폭파시키도록 뒀다가 그 실체를 캐는 대신, 사람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폭파를 예고하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내고 폭파를 막은 이방우 때문이리라. 하지만 영화 속 정부 위의 정부, 라는 존재가 결국 미궁 속으로 숨어들고 말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영화 속 정부 위의 정부는 실은 정부 안의 정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정부 위의 정부가 자행하는 일이라고 말해지는 일들은 실제로는 (그러니까 영화가 아니라 실제하는 현실인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에서는) 정부 안의 정부, 그러니까 정보기관이나 그 기관과 유착되어 있는 정치인에 의해, 그리고 일부 언론인들의 비호 속에서 자행되고 있었거나 현재도 진행 중에 있을 것이라 유추된다. 그러니 사실 고래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큰 의미는 없고 오히려 그런 경우 영화는 사회성을 잃고 아예 픽션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 (드라마 <아이리스>나 <아테나>를 떠올리면 되겠다)


  이러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쉬움을 짙게 남긴다. 음모론이라는 장르의 개척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와 같은 작품이 있기는 하였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추격 장면은 좀 맥이 빠지고, 누구나 다 들락거리는 호프집 화장실 옆쪽으로 차려진 비밀 아지트도 현실성이 없고, 손진기가 남긴 클립에 꽂힌 만원짜리를 보자마자 그 숫자에 전화를 걸 생각을 하는 (그 숫자에 살짝 동그라미 표시라도 하나 해놓으시지) 이방우의 신기에 가까운 추리력도 보기에 민망하다. 사회성 짙은 음모론 영화라는 것에는 짙게 공감지만 여기에 잘 만들어진, 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기에는 어딘가 모자란, 그래서 더욱 아쉬운 영화이다.



모비딕 / 박인제 감독 / 황정민, 진구, 김민희, 김상호 출연 / 112분 / 2011


매거진의 이전글 이창동 감독 <오아시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