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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13. 2024

이창동 감독 <오아시스>

기름진 세상에서 더욱 투명하게 빛났던 오아시스...

  *2002년 10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너무나 자주 이놈의 도시를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되돌아올 것을 예상한 그런 떠남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정리하고 나의 모든 자욱과 함께 이곳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설령 그렇게 떠난 내 자리가 음습한 기억으로 발목을 부여잡는다 하더라도, 뒤돌아보지 않을 자신감이 도도하게 성장하는 순간 난 당장 박차고 나갈 작정이다. 


  내게 도시는 오래전부터 너무 느끼하다. 두 눈에 드리운 기름막을 뚫고 날 향하는 도시 사람들의 눈빛이 느끼하고, 길다랗게 그림자 드리우며 끈적끈적한 어둠을 만드는 도시의 빌딩이 느끼하고,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길게 소리를 내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 자동차들이 느끼하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비극도 생산되지 않을 것 같고, 어떤 진정도 그 빛을 잃을 것만 같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하루가 지났다. 과거 함께 시를 공부했던 선배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고 그 자리에서 시를 쓰려고 하지는 마. 그렇게 만들어진 시는 너무 가벼울 수 있어. 그 풍경을 머리 속에 가두고 자꾸 자꾸 생각을 하는거야.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는데, 아직도 풍경을 보았을 때의 감격이 네 속에 그대로라면 그때 쓰도록 해.” 선배는 욕심이 앞서는 내게 버들잎을 띄운 물 한잔을 내밀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아시스를 보고나서 가슴 속에서 안개가 자욱히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스크린을 바라보던 시선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방향감각이 사라진 지금 자리에서 일어선다면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아름다운 영화가 제공한 풍경, 그리고 그 풍경에 감격한 내 속내를 글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곧 선배의 충고를 떠올렸다. 조금만 참아보자. 몇 시간이라도 좋고, 며칠이라도 좋고 참아보도록 하자. 후. 그렇대도 내가 참아낸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달군 화두는 사랑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종두와 공주의 사랑의 탄생과 성장을 내내 가슴졸이며 지켜보는 일은 가감없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세상의 절망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종두과 공주. 끊임없이 코를 훌쩍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세상을 향해 똑바로 눈맞추지 못하는 종두.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팔을 휘휘저으며 혈육으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움을 환상으로 달래는 공주. 



  거칠게 질주하는 세상으로부터 서너발짝 물러서 있는 이들의 사랑은 그래서 더욱 진기해 보인다. 어떠한 사심이 끼어들 틈이 없도록 절망적인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더없이 순수하게 아귀가 맞아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볼 여력조차 없는 이들은 그저 마음의 지시에 따라 서로를 향할 뿐이다. 거친 열정이나 탁월한 사랑의 테크닉도, 허영 가득한 베품이나 자멸을 이끄는 의심도 이들의 사랑에는 움틀 공간이 없어 보인다. 그저 그렇게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세상의 한켠에 자리한 오아시스처럼 청량하게 사랑할 뿐이다.


  이처럼 희귀한 사랑을 가능하게 한 이창동에게 먼저 감사한 마음이다.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을 거치면서 그는 이제 소설가에서 영화 감독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그는 진작에 영화 감독이었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은 소설에서보다 영화에서 훨씬 진하게 발현된다. 진지한 성찰 대상으로서의 사회와 인간이 그의 영화적 표현 앞에서 더욱 성숙해진 기분이다.



  하지만 이창동의 이전의 두 영화가 온전히 감독의 것이라면, 오아시스는 그 훌륭함의 책임을 배우들이 알맞게 나누어 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설경구는 자신 특유의 발산적인 힘을 정말 놀랍게도 스스로에게 가두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설경구의 힘은 종두의 어리숙한 삶과 어리숙한 행동거지 안에서 잘도 다독여지고 있다. 설경구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하지만, 오아시스에 최고의 공헌을 한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문소리다. 그녀가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 객석의 우리들이 당황해야 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완벽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구겨, 극중의 공주를 탁월하게 소화하고 있다. 그녀의 연기가 있어 비로소 오아시스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녀가 온몸으로 부르짖어 주었기에 오아시스의 사랑은 더욱 절박할 수 있었다.



오아시스 / 이창동 감독 / 설경구, 문소리 출연 / 132분 / 200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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