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속에서 허물어지고, 말과 소리 없음에서 다시 일어서는 연애와 영화의
*2012년 3월 1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갖지 못하였는데, 토요일 TV 독립영화관을 통하여 드디어 보게 되었다. 만들어진 년도를 보니 <낮술>, <워낭소리>, <똥파리>와 같은 웰 메이드 독립영화가 등장하였던 2009년보다 조금 빨랐다. 수다스럽고 형식 파괴적이며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메타 텍스트적인 요소와 함께 정치적인 유머 (갑작스런 실어증 증세로 병원을 찾은 감독에게 의사가 혹시 집안에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사촌 형 중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어요.”) 또한 포진하고 있는, 마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영화에 가깝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여기 꽤 찌질해 보이는 감독 지망생 영재가 있다. 아마도 몇 편의 독립 영화를 만든 경력이 있는 듯한 영재는 이제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감독 입봉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순간에 여자 친구 은하가 떠나 버린다. 영재는 입봉을 앞둔 중요한 순간 자신을 떠난 은하가 야속하기만 하다. 시나리오도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프로듀서나 영화사 대표와 협상도 해야 하고, 배우들이나 스텝들도 미리미리 섭외를 해야 하는 이러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떠나다니 말이다.
여하튼 영재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의 한 도시의 영화제에 참석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프로듀서, 대표 등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편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게다가 영화제에 참석한 일본 배우가 자신의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희망이 있다. 하지만 웬걸, 영화제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난 영재는 그만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그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영재는 복화술이 가능한 배우와 함께 일본 배우 측 인사를 만나고, 배우와의 미팅 약속을 잡고 밤에는 영화계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목소리 대신 피리 소리를 비롯한 악기 소리를 내게 되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결정적으로 일본 배우에게는 까이고, 영화는 엎어지게 되고, 은하와의 관계 또한 완전히 쫑이 난다. 그리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원봉사자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이 독립영화 감독과 가장 비슷한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홍상수를 꼽을 수 있겠다. 홍상수가 영화 속으로 지식인을 불려들여 지식인을 까는 것처럼, 감독은 영화 속으로 영화 감독 혹은 영화계 인사들을 끌어들여 영화 혹은 영화계 전반을 사정없이 깐다. 소통과는 가장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끊임없이 수다를 설파하는 영재의 영화에 출연한 복화술 배우는 관객의 모든 질문에 소통이라는 단어로 대답하고, 영재의 목소리는 마이크라는 도구를 거쳤을 때만 겨우 의미가 전달되며 그 전에는 그저 삐리리 피리 소리에 불과하다. 소통을 주제로 하였던 영화의 프로듀서는 하룻밤을 같이 보낸 어리버리 남자로부터 도망을 다닌다.
영화는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아이러니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애랑 영화는 비슷해. 좋을수록 말이 필요 없지.” 라고 말하지만 영화 속의 연애는 끊임없는 수다 속에서 허물어지고, 대신 말 없음과 소리 없음으로만 다시 수복된다. 영화는 소통이고 ‘그게’ 있어야 한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실체를 알지 못하니 그것에 접근할 가능성 또한 없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툭툭 끊기지만 그것이 곧 미덕이 되는 영화이다.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바짝 무장하고 있어 순수하되 순진한 영화에 머물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던 아우라는 사라지고, 그것을 설명하는 말만 넘쳐나는 현재의 상황과 그 상황을 산업으로 이어가는 자본 그리고 그 자본에 저항하지 않고 그저 매몰되어갈 뿐인 영화 관련 종사자들을 향한 독설이 나름 재미있었다.
은하해방전선 / 윤성호 감독 / 임지규, 서영주, 박혁권 출연 / 99분 / 2007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