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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윌 버킹엄 《타인이라는 가능성》

낯선 만남은 연일 축소되어 가는 세상에서도 여일한데...

  *2022년 7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세 달 전인 사월 초에 두 분 부모님이 코로나를 앓았다. 이후 어머니는 기침 가레라는 단순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이후 많은 것을 잃은 상태이다. 뚜렷한 인지저하와 신장 기능이 투석 직전으로 떨어졌다. 두 분 부모님이 코로나를 앓는 동안 나는 부식을 실어 날랐는데, 현관을 지나 거실에 봉투를 내려놓는 동안 살핀 아버지는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는데...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의 삶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고립과 외로움을 악화시킨다.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 살고 고층 건물과 지하철로 밀려들며 붐비는 보도 위의 좁은 공간을 두고 다투는 사회적 포유동물이다. 그러면서도 연결되는 것을 어려워한다. 도시화는 외로움을 부채질하고 도심에서는 1인 가구가 갈수록 증가한다. 지난 2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생활방식이 바뀌었다. 한때 우리 대부분은 농경사회에서 살았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여러 세대가 한집에 살았고 계층 이동의 기획가 적었으며 장거리 여행이 드물었다. 그때는 자기 부족과 소속 집단을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삶은 더욱 원자화되었다. 이동이 더 쉬워졌고 많은 사람이 혼자 살며 관계가 일시적이고 덧없어졌다. 그 결과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퍼졌다... 도시 생활의 역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함께라는 느낌이 없다는 것, 우리가 그 느낌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pp.19~20)


  두 분이 코로나에 걸려 있을 때 아내는 마라톤 완주를 앞두고 있었다. 아내는 육체와 정신의 초점을 온전히 달리기에 맞추고 있었으므로 부모님의 코로나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투로 한 두 번 내게 물은 것이 전부였다. 아내가 마라톤 완주를 하는 날은 마침 부모님의 격리가 끝나는 날이었다. 나는 마라톤 완주를 끝낸 아내를 집으로 데려온 후, 이틀이 지난 다음 결국 참지 못하고 아내를 불러 세웠다.


  『... 로마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두를 신뢰하는 것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것만큼 문제다(전자는 더 가치 있는 행동이고 후자는 더 안전한 행동이겠지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네카는 틀렸다. 모두를 불신하는 것만큼 내 취약함을 드러내고 나를 고립시키며 위험에 빠트리는 행동은 없다.“ (p.62)


  그리고 꼭 필요한 말이었나 짚어보게 되는, 그러니까 우리가 잠시나마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활동을 한 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와 애정의 마음 때문 아니었느냐, 그리고 우리들의 부모는 가장 가깝게 위치한 타인 그것도 허약한 타인일 터인데, 그에 대한 배려조차 원활하지 않다면 우리가 저 기득권화된 정치권의 엘리트 운동권 출신 위선자들과 무엇이 다르냐, 라고 몰아쳤다.


  “우리는 낯선 사람 수백만 명이 바글바글 살아가는 세계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대략 150명 정도만 예의주시할 수 있는 뇌를 가진 생명체다. 그러나 우리는 메가시티와 고층건물로 떼 지어 몰려가고,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쭉 모르는 사이일 수만 명에게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도시에서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도 우리는 놀라울 만큼 잘 버틴다.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무성하지만, 우리는 꽤나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다. 나중에 인류애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의 거리에 나가보라.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게 마실 음료를 준비하라. 거의 모든 곳에서 인간이 타인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데 놀라울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p.247~248)


  내 부모를 향한 아내의 무덤덤함에 서운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언가에 몰입하면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에 소홀하고, 그 소홀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내가 걱정스럽기도 하여 나는 말했고, 아내는 내 말에 수긍해주었다. 덧붙여서 나는 아내에게, 우리는 이제 과거의 우리가 아니고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통하여 도움을 주고받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현저한 늙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도 말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 정확히 말하기는 힘듭니다... 사람에 따라 달라요. 하지만 아마 2년이나 3년 정도일 겁니다... 우리는 둘 다 울기 시작했다. 2년안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 같았다... 그러나 2년은 계속해서 삶을 살아나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헬렌 덴모어는 말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나는 내가 죽어가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잘린 줄기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비록 잘린 줄기지만 계속해서 꽃을 피워내려고 노력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몇 주 뒤 엘리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집필할 시간을 마련하려고 일을 그만두었다. 엘리는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고, 떠나기 전에 이 세상에 무언가를 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여름에 코펜하겐으로 휴가를 가기로 했다. 엘리가 늘 덴마크에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에 손님을 초대했고, 언제나처럼 내가 요리를 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세상과의 문턱을 낯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도시 외곽에 넓게 펼쳐진 초지를 거닐며 물총새와 잠자리, 갈대 사이를 지나는 여우를 발견했다. 저녁이면 함께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었다.』 (pp.309~310)


  책에는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버지의 코로나 이후 세 달, 나는 과거와 같은 사람이면서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녔고 주중의 점심 식사를 챙겼다. 아내는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 나와 함께 부모님을 찾아 저녁을 했다. 그사이 엄마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압박 골절로 병원에 시술을 받아야 했다. 사실 낯선 만남은 연일 축소되어 가는 세상에서도 여일하다. 



윌 비컹엄 Will Buckingham / 김하현 역 / 타인이라는 가능성 (Hello, Stranger) / 어크로스 / 351쪽 / 20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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