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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크리스티앙 보뱅 《그리움의 정원에서》

빗소리 사이사이로 사랑과 죽음을 귀담아들으며...

  “16년 동안, 나는 어디든 너와 함께했지만 1995년 8월 12일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왜 불가능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치 네가 유리나 공기 뒤에, 1밀리미터 두께에 불과한 공기나 빛, 유리 같은 무언가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네가 바로 저편에 있는데, 아무리 오래 유심히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더 잘 보기 위해...” (p.18)

  - 1979년 크리스티앙 보뱅은 지슬렌 마리옹을 만났다. 그는 그 만남을 두고 자신의 두 번째 탄생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16년, 두 사람은 사랑하였고, 1995년 여름 지슬렌 마리옹은 파열성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그는 글을 썼다. 그는 글을 쓸 수 없거나 쓸 수 없어야 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죽은 자들에게 말하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단 한 가지 뿐이다.


  변함없이 계속 살아가라.

  더욱더 잘 살아가라.

  무엇보다 악을 행하지 말고 웃음을 잃지 말라.” (p.49)

  - 아내가 떠난 뒤를 생각하면 슬프다. 아내는 결혼할 때 자신보다 내가 잠깐이라도 더 살아 있기를 소원한다고 말하며 그것에 대해 약속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만약 아내가 떠나고 나면 나 또한 아내가 내게 전하는 말을 듣기 위해 애쓸 것이다. 바로 그때 내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이 뻔한 아포리즘을 떠올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앞으로 견뎌내야 할 많은 죽음 뒤에도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 네가 죽은 다음 날, 이제 더는 글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죽음은 종종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고 과오를 저지르게 한다. 침울함 속에는 미숙한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마치 심통을 내다가 계속해서 그 기분에 사로잡혀 버리는 아이처럼, 인생이 우리를 벌한다고 생각하고 인생을 벌하길 원한다. 나는 곧 깨달았다. 내게는 적어도 써야 할 이 한 권의 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지금 바로 일 수도, 10년 후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명확히 깨닫는다. 지금도, 10년 후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p.82)

  - 크리스티앙 보뱅의 지슬렌 마리옹은 1995년 세상을 떠났고, 이 책은 1996년 출간되었다. 그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하여 패배자로 머물지 않아도 되었다. 삶과 죽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고 느끼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투적이어도 어쩔 수 없다. 경계가 흐릿하여 그것들을 풀어내는 일은 요원하다, 고 포기해버린 아버지가 근거리에 있는 탓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며 아버지에게로 향하곤 한다.


  “... 내 고향은 가로 21센티미터에 세로 29센티미터의 백지다. 가장자리에 크뢰조 마을이 있다. 혹시라도 더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면, 거기에 주변의 평야들을 조금 더해야 하리라. 오툉은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p.84) 

  - 크리스티앙 보뱅의 시적인 문장들은 책장을 덮고 나서도 눈에 밟힌다. 백지를 고향으로 삼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작가의 문장들은 눈으로 덮인 포도에 이제 막 찍힌,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위에 새겨진 문양 같다. 나는 책장을 덮은 이후에 그것들을 눈으로 다시 한 번 더듬으려 애를 쓰고, 그것들이 눈에서 멀어져 부재하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다시 책장을 열고야 만다. 


  “... 눈은 어린아이다. 죽음은 어린아이다. 사랑은 어린아이다. 죽음은 사랑처럼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우리를 혼미하게 한다. 사랑은 눈처럼, 죽음은 사랑처럼 우리 안에서 어린 시절의 열병을 깨운다. 죽음은 갓난아기나 노인, 혹은 마흔네 살이나 곧 마흔다섯 살이 될 요정들을 낚아채고, 그 직전에 그들에게서 나이를 지운다. 죽음, 사랑, 눈은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매료시킨다. 내리는 눈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다...” (p.94)

  -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내리는 눈을 앞에 두고 반응하지 못할 때, 사랑으로부터 멀어질 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노인이다. 나는 지금껏 매혹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속절없었다. 나는 비로소 매혹당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노화의 시간을 지연시킬 것이고, 또한 죽음과 스스럼없어질 것이다. 사랑과 죽음을 귀담아들을 생각이다. 온종일 내리는 빗소리 사이사이로... 



크리스티앙 보뱅 Chirstian Bobin / 김도연 역 / 그리움의 정원에서 (La Plus Que Vive) / 1984Books / 125쪽 / 2021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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