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함께 여행하는 (피터), 폴 앤 매리의 five hundread..
제목 참 걸쭉하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라니... 그리고 영화의 아름다운 포스터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소의 널찍한 등짝이 한 가득이다. 아마도 우생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경험한 감독이 조금 찝찝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예 구도의 길을 함께 걸어보자, 감독이 우리를 향해 대놓고 손짓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나이 든 청년 선호는 집구석에서 소나 끌면서 밭을 가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꼴 베서 소 먹이는 것이 지겨워 집에서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고 대학까지 나왔지만 이제 다시 소똥이나 치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시인입네 지역의 문학하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기는 하지만 그러한 모임에서도 배알이 꼴리는 일 투성이니 돌아오는 길 똥개 앞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고, 아침나절 아버지로부터 물 세례나 받으니 이도 꼴사납다.
그리고 이제 선호는 이 모든 상황의 원횽인 것만 같은 집구석의 소를 확 팔아버릴 작정을 하고는 트럭을 몰고 자신과 소를 쫓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냅다 튀어버린다. 그렇지만 소를 파는 일도 쉽지는 않고, 자꾸 코뚜레에서 피가 비치는 소도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소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느닷없이 옛날 여자 친구인 현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내용인즉슨 선호의 친구이자 현수의 남편이었던 민규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소와 함께 하는 여정은 생각보다 길어진다. 민규의 빈소에 들러 현수와 조우하고, 아픈 소를 끌고 오른 산에서는 맙소사라는 이름의 절에서는 술을 대접받고, 그사이 사라졌던 소는 돌아오고, 동물병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소는 한수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되고, 소도둑으로 체포되어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는가하면, 자동차 정비소에서 빌린 차는 논두렁에 들이박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도심 한 복판을 소와 함께 걷고, 사십구재가 있는 도심의 절에서는 동기들에게 뭇매를 맞고, 그리고 이제 애초에 여행이 시작된 곳, 산자락의 긴 밭두렁으로 다시 복귀한다.
그리고 그사이 오래전 피터, 폴 앤 매리의 500 마일즈를 들으며 떠났던 바다로의 여정과 바로 지금 소와 함께 하는 여정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피터는 없지만 그 자리를 수소 한수가 대신하는 것이다. 셋이 함께 달렸던 백사장에는 되새김질 하는 소가 자리를 잡고, 셋이 함께 마셨던 술을 이제는 둘이 마신다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상황이다. (산 아래 백숙집에서 벌어지는 술판과 허름한 방안에서의 스킨십과 대화는 홍상수를 닮아 있다)
그런데 꽤나 현실적이었던 영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구도의 세계로 급물살을 타고, 건너가 버린다. 맙소사 벽에 그려져 있던 십우도 속의 소가 움직이면서 조금씩 그 기운을 풍겼던 구도의 세계는 소의 등에 타는 것을 업으로 여기는 부자의 출현, 그리고 폴과 매리의 낮잠 속에서 벌어지는 소의 탈취를 거치더니 급기야 CG가득한 불타는 맙소사와 그러한 맙소사 소실의 소식을 TV로 확인하는 시간과 공간의 순환의 경지에 다다른다.
어쩌면 욕심이 조금 과한 것이 아닐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곧 경중미인(거울 속의 미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체가 없는 허상을 일컫는다)이 아닌 자신의 본성과 정면으로 맞서는 법과 일맥상통함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감독의 과한 욕심이 그만 영화의 일부분을 경중미인으로 만들어버린 형국이라고 해야 할까. 나름 유의미한 구석이 많고 코믹함 속에서도 침잠의 여지를 주는 한갓진 영화인데, 소의 목에 매달린 무거워 보이는 풍경처럼 어디서부턴가 아리송한 옆길로 샌 느낌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 임순례 감독 / 김영필, 공효진, 먹보(소) 출연 / 108분 / 2010 (2010)
ps. 십우도 十牛圖 (혹은 심우도 尋牛圖) :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불교 선종화(禪宗畵). ① 심우(尋牛):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헤매는 것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 ② 견적(見跡):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③ 견우(見牛):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④ 득우(得牛):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⑤ 목우(牧友):동자승이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으로 변화된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흰소에 올라탄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⑦ 망우재인(忘牛在人):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빈 원상만 그려져 있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⑩ 입전수수: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이나 목동이 포대화상(布袋和尙)과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육도중생의 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