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도대체 몇 개의 죽음이 필요한가...
*200년 5월 1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감독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블록버스터급 독립 영화가 쏟아지는 해가 되고 있다. <워낭소리>와 <낮술>에 이어 도착한 <똥파리>는 앞의 두 작품들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핵폭탄급의 정서적 충격을 퍼부으며 평화롭기 그지없는 관객의 마음을 들쑤셨다. 그렇게 똥파리의 진실은, 온 몸이 파묻힐 듯 너그러운 영화관의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할 정도로, 펄떨펄떡 뛰는 심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눈꼽만큼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 가족(?) 영화가 (그에 비하면 <가족의 탄생>이나 <좋지 아니한家>는 얼마나 희망적이었는지...) 우리 영화사에 또 있었는가 싶은 심정이다.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삼십년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들 주변의 실제 상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동안 (혹은 오래도록) 주인공들의 주변 풍광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 수밖에 없다.
영화는 용역 업체 직원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상훈의 이야기이다. 자포자기식의 빈정거림과 비린내 가득한 폭력성으로 가득한 상훈은 그렇게 번 돈으로 가끔 배다른 누이의 아들에게 선물을 사주는 것만을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훈은 길에서 자신의 가학 성향을 거울에 비춘 듯 어찌 보면 피학 성향을 가진 듯한 여고생 연희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야말로 상양아치의 표본이랄 수 있는 상훈의 막되먹은 욕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댓거리를 하는 연희의 존재를 상훈은 조금은 당황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재밌어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멜로 라인이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서기엔 버겁다. 자신의 여동생을 죽이고 아내 또한 죽게 만든 책임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출소한지 얼마되지 않은 아버지를 두들겨 패는 상훈과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도 끊임없이 엄마를 괴롭혔고 결국 죽음으로 몬 아버지와 아버지의 얼마되지 않는 돈마저도 가져다 쓰기 위해 누나에게 손찌검도 불사하는 남동생을 둔 연희가 온전하게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영화는 생양아치 상훈이 자신의 조카와 연희를 통하여 조금씩 자신을 개선하려는 찰나, 그러니까 양아치로서의 본분을 잊고 주춤주춤 하는 사이에 덜컥 우리들의 정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말끔하지만 박제되어 있는 듯한 희망을 주는 대신 감독은 불편하지만 살아 있는 절망을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제 상훈이 좀 사람 사는 것처럼 숨을 쉬어볼까 하는구나 라고 여기는 찰나 감독은 사정없이 관객의 등을 밀어버린다. 그리고 상훈이 마지막 몇 가닥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우리들의 심장도 따라서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들의 눈을 의심케 할만한 연기로 우리들의 울렁증을 배가시키는 배우들이 있다. 대충 깎아 놓은 듯한 밤톨머리로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양아치를 구현한 상훈이나 주먹질 한 방에 기절을 하면서도 상훈을 물고 늘어지는 연희가 있고, 빌린 돈 받아주는 싸가지 없는 일을 하면서도 상훈의 퇴직금을 챙겨주는 만식과 제 누나에게만 집중되던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가차없이 한 번의 망치질로 폭발시키는 영재가 있다.
별다른 사회 비판의 메시지 전달 없이도, 그저 구질구질한 가족 혹은 구질구질한 인생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엉망진창의 가족사에서 시작되고, 그 화해의 순간 부지불식간에 죽음은 들이닥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은 또다른 악행으로 덮혀지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세습으로 뒤범벅된 영화는 끝까지 온전한 희망을 주지 않는다. (상훈의 죽음 일년 후 용역 업체 사장이 차린 고기집에 모인 사람들은 일견 평화로와 보이지만 돌아오는 길에 연희는 자신의 동생이 과거 상훈이 걸은 길을 답습하고 있는 모양을 확인해야 한다.)
영화가 좋았다 혹은 나빴다 라고 단언하기 이처럼 힘든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가 출구라고는 없어 보이는 영화 속,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 존재하는 인간군상들, 하지만 자꾸만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정말 불편하였다. 그리고 이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함이야말로 우리들의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똥파리 (Breathless) / 양익준 감독 / 양익준, 김꽃비, 이완, 정만식 출연 / 130분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