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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정지돈 《···스크롤!》

같은 색으로 잘 정돈된 큐브처럼 해석되는 현대 사회의 반대 방향으로...

  “메타북스에 처음 온 사람은 누구나 그 규모에 놀란다. 메타북스가 속한 복합 콤플렉스 단지인 메타플렉스는 용산에 있지만 용산보다 규모가 크다. 건축과 지정학, 지질학, 4D 메핑, GIS, 메타피직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문을 가질법하다. 부분이 전체보다 크면 어떻게 부분이 전체에 속할까. 이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오는 착각이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은 자연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당신이 포티니 마르코폴루칼라마라의 토포스 이론에 대해 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p.24)


  나는 영화 <에너미>에 나오는, ‘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다’라는 문구의 추종자이다. 이때의 ‘추종’은 <나의 해방일지>에 등장하는 ‘추앙’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여기서 어느 정도, 라는 것은 ‘추종자’와 ‘추앙하는 사람’ 정도인데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지만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최근, 추종할 것이 없고, 추앙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만 보고 있다. 


  “정키는 아현동의 아파트에서 친구 둘과 함께 살았다. 그중 하나는 한예종을 나와 영화나 드라마 스태프로 일하며 독립 잡지를 만드는 즤(Z)였는데 그는 지우의 옛 연인이었고 프랜과도 인연이 있었다. 프랜에게 영화 리뷰를 부탁했는데 프랜이 펑크를 낸 것이다. 자신의 글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지만 즤도 완전한 호감은 아니어서 마감을 얼레벌레 미룬 탓이다. 즤는 생소한 감독이나 사상가의 이름을 말하길 좋아했고 프랜이 좋아하는 영화를 형편없다고 하거나 프랜이 싫어하는 영화를 저평가된 걸작이라고 추켜올렸다.” (p.38)


  감정이 결여된 세상, 감정 있는 것들을 낙오시키는 세상, 그래서 감정이 남아 있는 것들이 희귀한 세상, 감정이 남아 도는 것들은 도태되는 세상, 이라고 현대 사회를 부연하고 싶은 심정인데, 울고 싶은 사람 따귀라도 때리는 것처럼 소설은 감정이 배제된 채 삭막하여서 현대 사회를 보다 극적으로 구현하고 있구나 싶은데, 그게 또 손아귀에 잔뜩 힘을 주고 쳐다보기만 할 수 있는 큐브처럼 오리무중이기도 하다.


  “불가사의한 나날이었다. 물속에 잠긴 듯 먹먹하고 중력이 부재하고 힘과 의지는 기능을 상실했으며 어떤 흐름, 몽상과 탐색, 안락함과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이 교차했다. 나는 종종 생각했다. 미신 파괴자들이 하는 일은 뭘까. 이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소속도 활동 영역도 불명확한 점조직이 일정한 거처를 두지 않고 옮겨 다니며 스팸 같은 정보를 끌어모은다. 미신 파괴자들의 방식은 음모론자들과 닮아 있다.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파편적인 사실로부터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이끌어 낸다. 이것을 공적 시스템에 속한 업무라고 할 수 있을까.” (p.56)


  그래도 애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메모 노트를 살펴보니 소설을 읽고 나서 이렇게 적어 놓은 흔적, 세상은 정교한 것 같지만 엉성하고 엉성한 듯하면서도 정교한데 그래서 가상의 현실은 현실의 판박이 같으면서 또 동시에 딴판일 수밖에 없다, 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은 결국 해석이 될 것이고 또 구현이 될 것인데, 그렇게 결과로 남는 세상은 모든 면이 같은 색으로 정돈된 큐브 같을 것이다.


  “혼돈의 경험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인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경험, 감정적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 도덕적 이해를 벗어난 경험. 혼돈을 경험한 사람들이 음모론을 상상하게 되지. 에프가 말했다. 음모론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명해 주니까.” (p.60)


  나는 어느 때는 생각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또 다른 때에는 생각하지 않기 위하여 책을 읽는다. 《···스크롤!》은 생각하기 위하여 책을 읽는 시기에 읽었는데, 하필이면 그 리뷰를 쓰는 것은 생각하지 않기 위하여 책을 읽는 시기와 겹치게 되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일기 파일을 열었고, 한 번의 동력 전달로 끝없이 움직일 수 있는 영구 기관이라도 된 것처럼 그저 적는다.


  “그들에 따르면 현대의 정신은 밈에 의해 지배된다. 여기서 밈은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짤방보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원래 정의에 가깝다. 그러나 완전히 같진 않다. 그들은 음모론도 밈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밈은 관념이며 아이디어고 믿음이며 이야기이고 기술이며 생존 방식이다. 밈은 문명과 함께 탄생했지만 인간보다 오래 존재할 것이며 행성의 모든 유기체와 사물로 퍼져 나갈 것이다. 우주는 밈플렉스가 될 것이다. 그들은 bit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 bit는 생명의 근원이자 우주의 작동 원리였다. 모든 존재, 모든 입자, 모든 힘의 장, 시공간 연속체 자체가 비트로부터 기능, 의미, 존재를 얻는다...” (pp.163~164)


  그러나 다시,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계적인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인간성이라는 부족함이 있으니 좀더 감정을 실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세상의 진행 방향과는 무관하게 많은 일이 발생하였던 그때, 낯설게 흔적만 남은 그때, 떠올리기 위해서는 현재로부터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그때를 떠올리며 애쓴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친구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면 수치심을 참기 힘들다.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건 있었던 일이니까. 그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한 건 나다.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떳떳하지도 않다. 지금은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생각도 낯설게 느껴질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고, 생각은 다 가짜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느낌이다.” (p.189)  



정지돈 / ···스크롤! / 민음사 / 195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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