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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김훈 《저만치 혼자서》

내가 아내에게 대답한 것과 대답하지 않은 것의 사이에서...

  「명태와 고래」

  “백도白島는 방파제 북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일 킬로미터 해상에 뜬 무인도였다. 섬이라기보다는 바윗덩어리였다. 백도는 갈매기들의 오래된 서식지였다. 칠천 년 전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고래를 잡고 항일천 상류에 암각화를 새길 때부터, 그리고 그 이전 수십 번의 칠천 년 전부터 갈매기들은 백도에 서식했다. 갈매기들은 아침에는 육지 쪽으로 날아와 선창가를 뒤져서 먹이를 먹었고 저물면 백도로 돌아갔다. 갈매기들이 백도에서 떼지어 날아오를 때 끼룩거리는 울음소리가 마을에까지 들렸고, 아이들이 마당으로 달려나가 말리던 생선을 거둬들였다. 백도의 갈매기들이 떼 지어서 달려들면 작은 어선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무동력선 시절의 늙은 어부들은 말했다. 늙은 어부들은 생선 내장을 던져주며 갈매기들을 달랬고, 섬을 향해 고사를 지냈다. 그 어부들은 모두 죽고 없다.” (p.18) ‘모두 죽고 없다’라는 글자, 검은 선들에서 주춤한다. 나는 김훈의 소설들에서 자꾸 죽음을 길어 올리는 중이다. 아내는 내게 김훈의 소설이 볼만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럭저럭 그러하다고 말했다. 오래전 좋아하였던 문장은 여전한데, 요즘의 유행하는 문장들과는 속도와 결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나쁘다는 것이냐고 아내가 되물었는데 나는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좋은 것이냐고 아내가 또 물었는데 그때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설은 전쟁 때 남으로 내려와 백도가 있는 저 포구에 자리를 잡은 이춘개가 이후 어선을 몰다 살팔선으로 갈라진 북으로 흘러가 붙잡히고, 다시 풀려나 남으로 내려왔지만 어찌어찌 하여 보안법 위반 등으로 옥고를 치르고 풀려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우리 아픈 역사의 일부이다.


  「손」

  자신이 낳고 기른 아이가 청년으로 성장하여 한 여자아이를 강간하였다. 어미인 나는 경찰서에 들렀다가 그 여자아이의 아비인 목수를 우연히 만났고,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여자아이는 이후 한강에서 투신하여 목숨이 끊어졌고, 나의 아이는 군에 입대한 이후 이 사건으로 군 재판에서 십 년 형을 선고받았다.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투신한 이후 구조된 순간에 구조대원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자신의 아이가 자살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녁 내기 장기」

  이춘갑과 오개남은 서로에 모른 채로 공원에서 만나 내기 장기를 두는 사이이다. 이춘갑은 외환위기 때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위장 이혼하였으나 이후 사실상의 혼인 파탄에 이르렀다. 오개남은 신도시 북쪽의 비닐하우스에서 전세 살이를 하며, 오피스텔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재활용 물건들을 팔아 살아간다. 그렇게 소설은 두 노인의 생을 휘청휘청 따라간다.


  「대장 내시경 검사」

  이혼하여 혼자인 나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위하여 파출부 아줌마에게 동행을 부탁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일정 나이를 넘은 사람은 수면 내새경 검사를 위하여 반드시 동행이 있어야 한다는 룰이 생겼다. 그렇게 대장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검사를 진행하고, 오래전 헤어진 여인으로부터 그 아들의 취업 청탁을 받고, 헤어진 아내와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아주었던 은사의 빈소를 찾아간다.


  「영자」

  “... 영자는 깊이 잠들고 나서야 잠꼬대를 그쳤다. 돌이며지지 않는 것을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저절로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었다. 영자가 잠꼬대하는 어둠 속에서, 나는 때때로 영자와의 동거를 후회했다. 후회라기보다는 돌이켜지지 않는 것이 결국은 무너지듯이 영자와 헤어질 날이 다가오는 있는 것을 느꼈다...” (p.153) 영자보다는 나에 대한 서술이 훨씬 많지만 이상하게 영자라는 인물이 더 기억에 남는다. 각종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노량진의 묘사가 즐비하긴 한데, 작가인 김훈의 연배를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헛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48GOP」

  옛 전투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최정방에서 근무하는 임하사에게는 할머니가 있고, 할아버지는 오래전의 전쟁에서 전투 중에 사망하였다. 임하사는 그 유골의 수습에 대하여 아버지를 통하여 할머니에게 통보하였으나 아버지는 유골을 찾지 말라는 것이 할머니의 뜻이라고 편지로 알려왔다. 때늦은 유해 발굴단의 행위와 온전하지 못한 할머니의 마음 사이에 수십 년의 세월이 있다.


  「저만치 혼자서」

  오래전 마가레트 수녀는 라인강을 사이에 둔 이쪽과 저쪽의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고 아흔 살이 넘어 콜레라에 걸려서 죽었다. 오랜 후 충남 바닷가에 늙은 수녀들을 모시는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 세워졌다.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은 ‘도라지수녀원’으로 불리었는데, 그곳에 있던 오수산나 수녀가 도라지꽃의 색깔과 생을 설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 속옷은 루시아의 것이었다. 빨래가 가을볕에 마르면서 햇볕 냄새가 배었고 덜 빠진 오물이 희미한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L자 속옷 위에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았고, 바람이 불어서 속옷과 잠자리의 그림자가 땅 위에서 흔들렸다.” (pp.241~242) 손안나 수녀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하여 봉사하였고, 김루시아 수녀는 나환자촌의 아이들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두 수녀님은 한동안 같은 방을 썼지만 이후 김루시아 수녀의 요청에 따라 흩어졌다. 김루시아 수녀는 두 달 후에 죽었다. 



김훈 / 저만치 혼자서 / 문학동네 / 263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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