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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9시간전

김중혁 《스마일》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건네지는 이야기와 이야기의 거리...

  「스마일」

  “...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운 사람은 죽을 때 고양이의 털 뭉치를 토하게 되는데, 털 뭉치의 크기를 자세히 살피면 그 사람이 고양이를 키운 햇수를 짐작할 수 있다... 비행기 승무원들은 비행 도중 아무것도 먹지 않은 승객들의 명단을 만들어서 상부에 보고한다... 아버지의 레퍼토리는 구글보다도 방대해 보였다. 밥을 먹을 때나 함께 목욕을 할 때면 아버지는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데이브는 아버지의 말 중에서 믿는 것도 있었고, 믿지 않는 것도 있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믿고 싶은 것은 믿었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지 않았다. 데이브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은 걸 딱 한 번 후회한 적이 있다.” (pp.9~11) 그러니까 소설은 데이브가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아 후회한 딱 한 번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데이브 한 보다는 그 아버지의 삶이 훨씬 흥미롭겠다, 라고 넘겨짚게 된다. 김중혁 특유의 너스레가 하늘 위 비행기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바다에 무언가 던진 적이 있다. / 지구의 내장 속에 플라스틱이 있다. // 의미가 불명확한 문장들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쓴 것인지, 의도가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기 위한 메모인지 알 길이 없었다. 두 문장은 이어진 것이 아니다. 별개의 문장이다. 두 문장이 이어지는 것이라면, 그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p.73) 소설은 플라스틱 섬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조이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는 수진을 거쳐 나에게로 전달된다. 그러니까 조이로부터 내게로 곧바로 온 이야기가 아니라, 그 중간에 한 단계를 거친 이야기인 셈이다.


  「왼」

  “원주민들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이라는데 마셔봐, 이거 진짜 끝내줘. 술이 작은 안개로 바뀌어서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것 같다니까.” (p.87) 소설 속의 인물들은 왼손잡이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한 원주민 부족을 찾아가 생활하게 된다. 원주민 부족의 실상을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로 살펴보아야 하는 이 조사는 그러나 제대로 된 끝을 맺지는 못한다. 그리고 나는 이 문장을 읽은 날 술 한 잔을 하였다.


  「차오」

  차오는 내 자동차에 탑재된 인공지능의 명칭이다. 어느 날 나는 제3의 인물에 의해 해킹을 당한 차에 갇히고, 차오의 목소리로 가해지는 협박 속에 속수무책으로 납치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차에 실린 채로 납치를 당하게 되는 셈인데, 곧 닥치게 될 현실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휴가 중인 시체」

  “사람의 얼굴은 답안지예요. 문제지는 가슴에 있고 답안지는 얼굴에 있어서 우리는 문제만 알고 답은 못 봐요. 그래서 답은 다른 사람만 볼 수 있어요. 사람과 사람은 만나서 서로의 답을 확인해줘야 한대요.” (p.173) 개조를 하다 만 듯 한 45인승 관광 버스를 타고 유랑하는 주원 씨는 선뜻 나를 받아들이고, 나는 그와 함께 여행을 한다. 세익스피어를 매개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자책하는 그의 행동에 감춰진 비밀 또한 알게 된다. 



김중혁 / 스마일 / 문학과지성사 / 207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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