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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07. 2024

《외면일기》미셸 트루니에

사소해 보이는 많은 것들의 총합으로서의 외면, 의 집성체로서의 삶...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 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거의 반세기 동안 시골에서 살아온 나는 자신들의 내면적 상태 같은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수공업자들과 농사꾼들의 사회 속에 묻혀 지내는 터이다. 이 ‘외면일기’는 지난날의 소박한 시골 귀족들이 추수, 아이들의 출생, 결혼, 초상, 날씨의 급변 등을 적어두곤 했던 ‘출납부’와 비슷한 것이다...” (p.5)

  : 미투 운동이 한창인 적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 그들의 외면이었고, 우리가 간과했던 것이 그들의 내면이었던 것이라고 하면 너무 쉬운 판단이었다. 사실 우리가 보고 있던 것은 그들의 치장된 내면이었고, 우리가 그만 간과하고 만 것은 그들의 이미 드러나 있던 외면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셸 트루니에가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하는 외면extime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나는 새해의 시작을 구실 삼아 그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몇몇 친구들에게 내 모습을 드러낸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p.19)

  : 얼마 전 연락이 뜸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페북의 포스팅이 뜸하여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답이 없어 연락했다고 하니 후배가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낸다며 웃었다. 그 전에도 실없이 이런 식의 연락을 다른 후배에게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다른 후배 또한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자신은 절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데도) 형은 참 지치지도 않고 연락을 하네요, 라고 말했다. 어쨌든 두 후배 모두 좋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이런 식의 연락이 싫은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문학 분야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버린다.” (p.74)

  : 미셸 트루니에는 콩쿠르 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그는 2016년에 사망하였므로, 지금 그 10인회에서 누가 미셸 트루니에를 대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들 심사위원은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우선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좋은 분위기에서 먹는다. 그리고 작품들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에 실린 김화영의 인터뷰 글을 보자니 우리나라에서는 동인문학상이 이런 비슷한 심사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감을 받은 작가란 곧 자기 자신의 텍스트에 의하여 추월당한 작가다.” (p.156)

  : 작가가 긍정적인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 직전에 실린 글의 뉘앙스를 억지로 떠올리자면 부정적인 의미에 가깝지 않았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작가는 지식의 가치를 우대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든 작가는 (책이 나온 2002년 미셸 트루니에는 78세였다.) 그렇다. 


  “양을 기르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기는 독서를 매우 좋아해서 양 우리에 책을 가득 채워놓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독학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학한 사람과 정규적인 공부를 한 사람과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정한다. 독학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웠다. 그의 교양은 자기 자신의 인격의 한계 내로 제한되어 있다. 반대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골고루 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장점은 엄청난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보기에 자신으로서는 별 흥미도 없는 지식들을, 나아가서는 싫어하는 지식들 또한 습득해야 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p.286)

  : 역시 작가는 다양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우대하는 쪽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많은 것들이 그의 삶에서 그저 사소하거나 없어도 되는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작가의 책 안에는 별의별 내용이 (단순한 풍경 스케치, 여행 일지, 만남에 대한 노트, 소설 창작 노트, 남의 말 옮겨 적기, 수집된 농담 등등) 다 들어 있다. 어쨌든 우리의 삶은 그러니까 작가의 삶 또한 어떤 결과물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셸 트루니에 Michel Tournier / 김화영 역 / 외면일기 (Journal Extime) / 현대문학 / 335쪽 / 200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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