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하기 어려운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2009년 2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와오!!!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올해의 소설을 발견한 느낌이다. 올해에는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읽지 않은 자와는 농담도 주고 받지 않으리라는 되도 않는 다짐을 하게 될 정도이고, 기름기를 쫙 걷어내서 백년은 젊어진 듯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느낌이니, 지구의 중심을 뚫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주인공 오스카 와오를 향하여 140킬로의 속도로 나아가고 싶은 지경이다.
“오스카, 롤라는 몇 번이고 경고했다. 너, 변하지 않으면 평생 숫총각으로 살다 죽는다.”
소설은 도미니카에 뿌리를 둔 오스카 와오, 그리고 오스카의 누이인 롤라, 오스카의 엄마 벨리와 오스카의 조부에 이르는, 삼대에 걸쳐 진행된 유구한 전통의 ‘푸쿠’ (푸쿠라고 부르는 그것은 대개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가리킨다.)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이 ‘푸쿠’가 응집된 것으로 보이는 오스카가 겪어낸 지극한 혼동으로 가득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 말도 제대로 건네보지 못한 오스카의 짝사랑 상대들은 그가 가슴 속에 간직한 아나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빌어먹을 백색왜성의 밀도를 가진 사랑이었고, 그는 때때로 그 사랑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고야 말 거라고 확신했다. 그 사랑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책에 대한 그의 애정뿐이었다... 마치 천국의 한 조각을 삼킨 기분이야...”
태어나면서부터 사랑 혹은 섹스를 자긍심으로 삼고 자라면서 이를 실천하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찾는 도미니카의 후손이면서도 제대로 된 사랑과는 한참이나 거리를 두고 있는 오스카는 그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는 제스처를 취할 뿐인 여성에게조차 ‘천국의 한 조각을 삼킨 기분’을 느낄 정도로 순진무구하다. 하지만 이러한 순진무구함이 그의 사랑을 성공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으로 변하는 것은 요원할 뿐이다.
“... 염병할, 녀석은 몸무게가 거의 140킬로였단 말이다! 게다가 말은 <스타트렉>에 나오는 컴퓨터처럼 했다. 그런데 진짜 모순은 여자를 그처럼 갈망하는 자식도 없다는 거였다... 녀석에겐 여자가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였고, DC와 마블이었다...”
그러함에도 그의 사랑을 향한 지고지순한 열정은 끊임이 없고, 이러한 열정은 그가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그의 집안의 ‘푸쿠’, 그러니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도미니카 독재 정권의 대명사인 트루히요 혹은 트루히요의 시대가 빚은 ‘푸쿠’와 맞물리면서 결국 오스카로 하여금 한 순간에 낙인을 찍어 (파이어.) 영원히 각인될만한 사랑의 박제를 가능케 한다.
“... 차가 멈추자 오스카는 텔레파시로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에게(사랑해요 엄마), 삼촌에게(삼촌, 이제 그만 끊고 제대로 살아), 롤라에게(이렇게 돼서 미안해. 언제까지나 사랑해, 누나), 그리고 이제껏 사랑했던 모든 여자들 - 올가, 마릿사, 아나, 제니, 나탈리 - 과 그가 이름을 알았던 모든 이들에게, 물론 이븐에게도.”
정치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게 또 이상하게 정치 이야기만으로는 읽히지 않고, 사랑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게 또 이상하게 사랑 이야기만으로 읽히지는 않는 묘한 마력을 지닌 소설은 어쨌든 ‘더 강력하고 따뜻한 세상’을 염원한 것으로 보이는 오스카 와오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절묘하게 기록하고 있다. 무수한 책들 특히 코믹북과 무수한 게임들 특히 롤플레잉 게임 그리고 피해갈 수 없는 영화의 세례를 받고, 도미니카의 산토도밍고와 미국의 패터슨을 넘나들며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누나의 사랑에 힘입어, 또다른 이들을 향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페르몬으로 무장한 사랑의 아우라를 뿜어냈던 오스카 와오, 그의 이 짧지만 놀라운 삶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주노 디아스 / 권상미 역 /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 / 문학동네 / 426쪽 / 2008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