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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0. 2024

파스칼 브뤼크네르 《남편이 작아졌다》

신체 축소로 소외된 남편의, 삶을 향한 고군부투...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작가의 <아름다움을 훔치다>라는 소설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도발적이었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가 툭 던지는 소재 또한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당신의 남편이 점점 작아지게 된다면? 그러니까 소설은 자신보다 조금 적은 키를 가진 남자 레옹 그리고 레옹보다 훨씬 큰 키를 가졌지만 주변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꽤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솔랑주가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레옹의 어처구니 없는 변화는 두 사람이 첫 아이 바티스트를 출산한지 얼마 안가 시작된다. 옷을 끄집어내 입으려던 레옹은 갑작스레 커져버린 옷 앞에서 일순 당황한다. 그렇게 점차 작아지는 자신의 몸에 당황해하던 레옹과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자꾸 작아지는 남편에게 걱정스러운 짜증을 내던 솔랑주는 성장 및 내분비 전문의인 두블르부 교수를 찾아가게 된다. 


  “많은 남성들이 일흔이나 일흔 다섯은 돼야 겪는 걸 서른한 살에 벌써 겪으시는군요. 노화가 이렇게나 일찍 시작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고쳐드릴 테니까요. 장담컨대 올해 내로 적어도 5~7센티미터는 회복하실 테니 두고 보십시오.”


  하지만 두블르부 교수의 장담은 물거품이 되고 레옹의 지속적인 수축은 어느 순간이 되어서야 진정이 된다. 조금 작은 수준의 남자였던 레옹은 이제 초등학생 아이 수준으로 키가 줄었들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는 의사라는 자신의 직분에 따라 환자를 돌보고 어린 아들을 보살피고 결정적으로 아내와의 잠자리를 통한 남편 노릇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드디어 두 번째 아이 베티가 태어나게 되고, 그의 수축은 다시 시작된다.


  “... 몸이 줄어든 이래 레옹은 줄곧 핍박 받는 자들의 편에 섰다. 힘을 상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그로서는 신체적 우월함을 이용하여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짓밟으려는 자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레옹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의 아들에게조차 핍박을 받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두 아이와 같은 위치에 놓이며, 큰 아들과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하는 형국에 이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줄어들었음에도 유일하게 제 구실을 하는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끝’만은 남아서 솔랑주는 비극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하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기도 한 솔랑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또다른 잉태에 (게다가 이번엔 쌍둥이다) 이르게 된다.


  “... 레옹은 처음에는 한 여인의 남편으로 시작했다가는 그녀의 아들이 되어버렸고, 다음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더니, 이제는 아예 온 가족이 제거하지 못해 안달인 벌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인간 세계의 변두리를 영원히 떠돌다가 시간의 균열 속에 삼켜질 운명이었다...”


  그리고 쌍둥이인 베리니스와 보리스가 태어나는 순간 레옹은 10센티미터 안팎으로 줄어들면서 이제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이제 솔랑주를 비롯한 가족과 가정부 조지안느, 그리고 레옹의 성장을 장담했던 두블르부 교수 (하지만 이제 두블르부 교수는 솔랑주의 연인이자 아이들의 아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뿐이다.


  “기적은 재앙의 반대쪽 경사면이다. 재앙이 무고한 이들과 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내리칠 때, 기적은 애통해하는 이들에게 보상을 해준다... 어떤 기적이 일어났느냐 하면,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레옹의 몸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도대체 뭐가) 소설의 마지막 순간 레옹은 자신의 몸을 되찾지만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가족을 떠나는 순간 자신의 몸의 회귀라는 기적을 체험한 레옹은 결국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대신 자신이 탄생시킨 그곳 가정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눈물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생을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신체변형’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작가가 (전에 읽었던 <아름다움을 훔치다>에도 이런 약간의 신체변형이 삽입되어 있다, 참고로 작가는 파격적인 영화 <비터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주목한 것은 돌연변이성 신체 축소를 경험하는 남편 그리고 그 가족이다.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영혼이라고 여기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사실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몸에 의해 훼손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괴이한 소설은 딱 그 소재만큼 괴이하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 최서연 역 / 남편이 작아졌다 (Mon petit Mari) / 베가북스 / 198쪽 / 20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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