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독고다이 예술가가 한 뼘만에 바라보는 세상...
*2009년 2월 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만날 때마다 이 작가가 연재하는 블로그의 소설을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했던 친구가 어느 날은 드디어 이 작가가 썼다는 책을 한 권 들고 왔다. 만약 아저씨가 (음, 뭐라고 불렀더라...) 글을 쓴다면 아마도 꼭 이렇게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내게 건넨 책이 바로 이기호의 <독고다이>다. 그야말로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재밌는 제모의 소설집을 보고 꽤나 유쾌했던 기억을 되짚게 만드는 선물이다.
소설가의 책은 그러나 소설이 아니고 산문집이다.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것들로 ‘한 뼘 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대략 원고지 다섯 매 내외로 씌어진 아주 짧은 산문들 이백여 편을 모아 놓은 것이다.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아파트라는 공간에 살고 있으며,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아내가 있고 (아마도) 에세이를 연재하는 동안 태어난 갓난쟁이의 아빠이기도 한 작가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러나 소박하고 유쾌하게 자신의 할 말을 잽을 날리는 권투 선수처럼 짧게 끊어서 전달한다.
“... 이대로 가다 보면 머지않아 호랑이 또한 치와와처럼 꼬리를 흔들며, 사료를 받아먹으며, 마트 한쪽에 마련된 사물함에 갇혀,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능히 그것을 할 수 있는 종족이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타인 혹은 다른 종족의 본능을 참지 못하는 것...”
아마도 소설가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일상의 풍광들을 곁눈으로 슬쩍슬쩍 보아두었다가 본능처럼 에세이를 쓰는 것만 같다. 그렇게 주인을 따라왔다 마트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사물함에 갇혀 있는 치와와는 그렇게 작가의 시선에 잠시 머물다가, 인간이란 종족의 어이없는 본능으로 일파만파 확대되어 간다. 그 일파만파의 전과정이 원고지 몇 장으로 응집되는 것이다.
“... 흥미진진한 아내의 즐겨찾기 사이트들에 하나하나 들어가보다가, 맨 아래 한 거대 정당의 홈페이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아해서 내가 물었다. 너, 거기 당원이야? 아내는 아니라고 했다. 한데, 거기 토론마당을 왜 즐겨찾기에 해놨어? 그러자 아내가 짧게 대답했다. 오늘의 유머니까.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가하면 은연 중에 드러나는 그의 비주류스러운 정치색도 마음에 든다. 대놓고 상대를 향하여 머리띠 두르고 달려들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그래서 어쩌지 못하고 보수의 편보다는 진보의 편에 서는 운명을 느적느적 받아들이는 작가의 느물스러운 비꼼이 맘에 든다. 어쨌든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사고하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 젊음이란 우연적이고 부수적이며, 방황하고 불안하며, 늘 불만스러운 그 무엇이다. 그 젊음에 버릇이란 단어는 애초부터 들어 있지 않았다. 자신이 버릇없다, 라는 사실마저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젊음이다. 한데, 요즈음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 있다. 모두 ‘늙은’ 젊은이들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 ‘늙은’ 젊은이들은, 그래서 20대 초반부터 『부자 만들기』나 『부동산 성공 투자법』 같은 책들을 읽고 있다...”
작가는 훈계조차 삐딱하게 한다. 모두들 이 시절의 젊음에 대하여 치기어림을 지탄할 때 그는 오히려 요즘 젊음들의 버릇 있음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훈계를 대신한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끄덕끄덕 그의 생각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가 독, 고, 다이 라는 알쏭달쏭 하면서도 싼티나는 단어를 자신의 산문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도 이해가 간다.
“... 예술가들이 범인들의 관음증을 이용하고, 또 그것으로 돈벌이까지 나선 대표적 공간이 바로 헤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면서 든 또 하나 생각. 정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동료 에술인들과 모여 살지 않는다는 것. 오로지 홀로 살아간다는 것. 예술의 본질은 ‘독獨고GO다이DIE'라는 것.”
사실 아직도 친구의 충고에 따르지 않고 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인터넷 서핑을 감안하면 냉큼 작가의 연재글을 읽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게다가 친구는 책선물까지 하지 않았는가, 싶은데도 선뜻 커서가 움직이지 않는다. 앗, 그러고 보니 이러한 나의 내키지 않음 혹은 게으름에 대한 변명까지 작가는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 책들을 누군가 골라주면,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아닌, 강요가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 또한 하나의 대화이니, 그것이 타인의 강요보다는 훨씬 낫다...”
이기호 / 독고다이(獨GODIE) / 랜덤하우스코리아 / 309쪽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