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따끔거리는 일상...
녹슬지 않은 성석제의 말발을 확인할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간혹 산만해진다 싶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건 산문이지 않은가. 조금쯤 흩어진다고 해도 그 의중이 넌지시 전달되기만 한다면 그다지 거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들 주변의 정이 넘치는 일상들을 향하여 적당한 너스레와 농담이 섞인 시선을, 그러나 일견 똑부러지게 보내는 작가의 입담은 아직은 재미있다.
“기름이 둥둥 뜨는 쇠고기 국에 밥을 만다. 목구멍 아래에서 안타깝게 기다리는 내장기관에 국물과 밥이 뒤섞여 모내기철 도랑물처럼 내려간다. 식도가 화끈해진다. 배가 따뜻해진다. 반찬이 필요 없다. 밥이 반찬이다. 정수리에 땀이 솟는다. 이마에 열이 번쩍 난다. 후아후아, 입김 불어대는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그해 첫 햅쌀밥을 어머니가 끓여내온 쇠고기 국과 함께 넘기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 위와 같은 묘사는 꽤 경탄스럽다. 소설과는 또 다른 맛으로 산문 속 등장인물에 그대로 이입되고 만다. 그야말로 어린 시절의 내가 성석제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윤기 넘치는 햅쌀밥을 씹어 삼키고 있는 것처럼 입 안으로 그득하게 찰진 침이 고이는 것만 같은 것이다.
“여름에는 면을 몇 번 뽑기도 전에 주인이 입은 옷이 온통 땀으로 젖어버린다. 면을 뽑는 건 요리사지만 면이 요리사에게서 뽑아내는 것도 있지 싶을 정도다...”
일상 속의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시선이 차갑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짜장면집, 인근에 하나뿐이라면 인근에 하나뿐인 짜장면 먹는 행복감을 전달할 것이 분명한 그곳에서, 작가는 면을 뽑는 요리사가 아니라 그가 흘리는 땀에까지 정성스레 시선을 보냄으로써 우리들에게 소소하고 작은 행복감이 지낸 무게를 전달하기도 한다.
“왜 조물주는 불필요한 말을 듣지 않아도 되도록, 귀마개 같은 기관을 귀에다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으려 할 때 쓰도록 눈꺼풀은 만들어주었으면서?”
물론 특유의 툴툴대는 말투도 간혹 튀어나온다.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불상놈들을 향하여 도대체 언짢아서 툴툴대다가 급기야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눈꺼풀처럼 듣기 싫은 것을 듣지 않을 수 있는 귀꺼풀을 만들어주지 않은 조물주에게 한탄을 보내기도 한다. 작가 특유의 너스레는 그렇게 짜증나고 언짢은 순간에도 또다른 돌파구를 찾아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인터넷 덕분에 몰라도 되는, 몰라도 잘 살았던 정보와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범람하고 있는 까닭에 떠내려가는 수천수만의 사실 가운데서 몇 개가 눈에 띄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공과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가령 ‘많다’는 ‘엄청나게 많다’가 되고, ‘엄청나게 많다’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것에 의해 밀려나는 식이다...”
이렇게 작가의 시선은 농담 가득하면서도 압정처럼 따끔거리고, 정감 가득하면서도 신통한 상상력으로 우리들 일상을 가로지른다. 작가의 소설이 지지부진함에 안타깝지만 어쨌든 끊임없이 스스로가 바라보는 것을 기록하고, 그 기록에 자신의 속내를 지긋하게 담아내는 작업에 게으르지 않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가끔은 이렇게 농담을 읽으면서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성석제 / 농담하는 카메라 / 문학동네 / 338쪽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