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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7. 2024

김영하 《김영하 여행자 도쿄》

초점이 맞지 않아도 좋은 사랑스런 도시의 발견...

  도시를 사랑하는 편이 아니다. 난 사십대에는 바닷가에 살기를 희망하고 오십대 이후에는 산 아래 즈음에 살기를 희망한다. 물론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술자리에서 말이 나왔던 양평의 폐가가 떠오른다. 이천만원만 있으면 그곳 폐가를 사서 황토방으로 리모델링 할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근데 그 이천만원에는 폐가 구입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는지...)


  “... 남대문시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 남대문시장이오, 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니컬한 금언이 하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용감한 김영하는 도시를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게다가 우리의 도시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시까지도 사랑하는 것 같다. 물론 도시를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가 사랑하는 도시는 어쩌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그 도시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그 ‘도시’가 아니라 우리가 잘못 알고 있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은 그 ‘도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 롤라이35의 단점은 많다. 노출과 셔터스피드, ISO를 맞춰야 하고 눈대중으로 거리를 짐작해서 찍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귀찮은 동작들은 우리 육체가 일찍이 기계에게 내주었던 기능을 다시 우리 육체에게 되돌려준다... 롤라이35를 쓰려면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 감각, 빛과 어둠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좁고 어두운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세상을 둘러보아야 한다. 얼마나 환해졌는지 아니면 얼마나 어두워졌는지를 살펴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금씩 조절해가며 거리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도시’를 포착하는 도구로 카메라를, 그것도 필름 카메라를, 그것도 롤라이 35를 사용한다. 완벽한 수정을 거쳐 말끔하게 포커스 안으로 사물을 끌어당기는 디지털 카메라의 시선이 아니라 최대한 스스로의 육체를 이용하여 사물과 자신과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끌어당겨야 하는 롤라이 35의 렌즈를 통하여 그는 ‘도시’를 바라본다.


  “... 선명하고 깔끔한 이미지들만 만들어내는 모범생 카메라들에 비하면 롤라이는 마치 명절 때만 나타나는 문제 많은 삼촌처럼 보인다.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서서히 도태 중이고 그가 벌인 사업들은 모두 실패작이었다. 그러나 결함투성이인 그를 사람들은 미워하지 못한다. 궁정의 피에로처럼, 롤라이35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어떤 위안을 준다...”


  말끔하게 포장된 도시의 겉면이 아니라 흔들리는 도시의 또다른 면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김영하의 도시 사랑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롤라이35는 제격이라고 그는 끊임없이 역설한다. 이 롤라이35를 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잘 정리된 강박증 환자의 서랍’ 처럼 완벽하게 ‘튜닝’된 도시인 ‘도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겠느냐고 강변하는 것만 같다.


  “... 도쿄의 골목들은 대부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넓이로 되어 있고 불법 주차가 거의 없다. 길은 좁아도 주차된 차가 없어 보행자가 걷기에 쾌적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잘 정리된 강박증 환자의 서랍 같다... 이 튜닝은 너무 완벽해서 처음에는 그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 권의 책으로 흠결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김영하의 풍성한 사진으로 가득한 ‘도쿄’ 여행 사진 에세이집인 책은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바위섬과도 같다.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색다른 위안을 받았다. 사랑할 수 없는 이곳을 향하여 나 또한 롤라이35와 같은 보다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시선을 가져본다면, 어쨌든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그 시간까지 좀더 편안하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김영하 / 김영하 여행자 도쿄 / 아트북스 / 303쪽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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