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시로 가즈키식 긍정의 영사기로 플레이 되는 다섯 이야기...
오랜만에 손에 든 가네시로 가즈키... 언제나처럼 유쾌경쾌통쾌를 모토로 하는 듯한 그의 주인공들은 긍정적이기 그지없다. 물론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 는 류의 따분하고 계몽적인 긍정은 아니다. 내일 세상이 무너진다면 오늘 하루쯤 일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좋아, 라는 류의 대책 없지만 쿨한 긍정이 바로 가네시로 가즈키 식의 긍정이다.
「태양은 가득히」.
책의 서두 부분에서 용일, 영화와 같은 한국 이름이 나와 깜짝 놀랐다. (뭐야 일본 이름을 한글로 바꿔서 부르는 거야?) 그러다가 문득 아 맞아 이 작가 재일교포3세이고 민족학교를 다녔다고 했지, 라며 숨을 고른다. 소설은 어린 시절 영화를 보며 꾸었던 꿈을 조금은 우회적으로 성공시킨 내가 갑작스레 나타난 여자 친구로 인해 이제는 연락조차 끊긴 용일에 대하여 회상한다는 이야기이다. “... 시간이 흐르고 더불어 우리의 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는 더는 단순할 수 없었다.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인지도 분명하지 않았고, 현실에서는 우리가 용감한 영웅일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다른 부분도 나쁘지는 않지만 특히 마지막 부분, (마지막 보았을 때 야쿠자 똘마니였던) 용일의 이야기를 가네시로 가즈키 특유의 넉살로 뿜어낸다.
「정무문」.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함께 집체 칩거하기를 몇 개월... 그러던 고모토는 비디오 대여점의 알바생인 나루미에게서 걸려온 장기 연체 비디오 테이프의 반납요구 전화에 바깥 나들이를 결행한다. (그건 그렇고 얘네들은 삼개월이 연체되었다면 정말 하루에 얼마씩 삼개월치를 계산해서 받나보다. 우리라면 적당한 선에서 쇼부^^를 볼텐데...) 그리고 그 나들이를 통해 만난 고모토와 나루미는 이제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고모토는 안 좋은 일에 연루되어 자살한 남편이 지키려 했던 녹음기를 나루미로부터 받게 된다. “싫든 좋든 사람에게는 하늘이 정해 준 역할이라는 게 있는 거야.”
「프랭키와 자니」.
따돌림에 익숙한 이시오카와 아버지로 인한 충격에 시달리던 어줍잖은 우등생 내가 벌이는 유쾌한 갱 어드밴처 무비라고나 할까. 누구로부터 위안받을 수 없었던 두 아이가 드디어 서로에게 힘이 될 때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편견과 도덕은 개나 줘버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이시오카 못지않은 힘으로 그녀를 꼭 껴안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창문으로 여전히 달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모를 빛이 새어 들어와, 이시오카의 머리를 부옇게 빛냈다.” 아버지의 돈을 훔쳐 멀리멀리 도주를 결행하는 이들의 이야기의 끝이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궁금하다.
「페일 라이더」.
이혼 위기에 처한 부모 밑에서 방황하던 유는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오토바이 라이더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실상은 파마머리의 아줌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줌마와의 만남을 통해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는 범행현장을 목격한 남편이 범행 당사자인 야쿠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이를 복수하기 위하여 칼을 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아줌마가 있다. “이 영화, 아줌마가 정말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랑 같이 봤던 영화야.” 인과응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정무문이라는 타이틀의 소설에 어울리지만 어쨌든 이 아줌마는 오토바이 라이더니까...
「사랑의 샘」.
“... 우리가 피난 가 있을 때면 할머니의 집은 부모들엑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그것은 묵시적인 약속이었다. 말하자면 할머니의 집은 우리에게 성역 같은 곳이었고, 거기에 있는 한 우리는 아무 두려움 없이 날개를 접고 마음껏 쉴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아우라를 잃어버린 할머니에게 에너지를 주입하기 위한 손자손녀들의 고곤분투기이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할머니가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보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로마의 휴일> 상영회를 갖고 그곳에 할머니를 불러들이는 것... 이처럼 사랑이 묻어나는 그들의 여정에서는 또 다른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잊고 지내던 자신의 꿈을 되살려 내기도 하면서, 할머니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도 에너지 충전의 기회가 된다.
서로 다른 주인공들을 삼고 있는 다섯 편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교차로를 통과하듯 각각의 소설이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소설에 등장하는 <로마의 휴일> 상영회는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이 포스터로 보거나 직접 찾아가 영화 관람을 하는 등 빠지지 않고 다른 소설에도 등장한다. 신호등을 보고 알아서 제갈길 찾아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드는 교차로 한 가운데 서있는 교통 경찰관 같다고나 할까...
가네시로 가즈키 / 김난주 역 / 영화처럼 / 북폴리오 / 424쪽 / 2007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