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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1. 2024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폐허 속에서도 눈멀지 않는 따뜻한 타자의 시선...

  한참 동안 책을 읽고 있다가 눈을 들면 갑자기 주변으로부터 환한 빛들이 들어오고는 한다. 난 순간 의심을 하고 눈을 몇 차례 깜박거린다. 아, 아직 나의 눈은 괜찮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시 주변 사람들은 괜찮은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살핀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그렇게 책을 읽고 눈을 깜박거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댄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떻게 이리도 눈먼 사람들의 행태를 (마치 눈멀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도 되는 것처럼) 잘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눈먼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여러 가지 상황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자아내었을 감정의 동요를 이리도 정밀하게 그릴 수 있게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러니까 소설은 제목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그려내고 있다. 

 

  (그 반대는 잘 하면서도...) 사실 이미 본 영화를 책으로 복습하지는 않는 편인데 (그러니까 <브로크백 마운틴> 이나 <색계>의 원작을 사놓고도 보지는 못했다...), 영화의 충격이 과했던지라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영화에 의해 축약된 이미지를 텍스트의 파노라마로 다시 읽는 일 또한 그리 나쁘지는 않았으나, 어찌 되었든 자꾸 파고드는 이미지 때문에 조금 곤혹스럽기는 했다. 

 

  “... 사실 그 병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들이 있었다... 약국 직원은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에게 안약을 판 사람이며, 택시 운전사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의사에게 데려다 주었던 사람이며, 경찰관이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은 어린애처럼 울고 있던 눈먼 도둑을 발견한 사람이며, 호텔 청소부는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을 때 처음 그 방에 들어갔던 사람이다...” 

 

  소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가 눈이 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연이어 사람들이 눈이 멀고, 그 사람들을 정부 차원에서 격리 수용하게 되고, 그 곳에 수용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아귀다툼이 이어진다. ‘여기에 온 세상이 다 들어와 있어요’라고 말하는 유일하게 눈 뜬 사람인 의사의 아내의 말처럼, 그곳 눈먼 자들의 도시 또한 눈뜬 자들의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세상이 펼쳐진다. 

 

  “...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더욱 관심을 끈 것은 불에 탄 건물을 뒤로 하고 그 사람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왔을 때가 아닐까. 영화에서는 비교적 짧게 표현된 그 시간이 (아무래도 임펙트는 옛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동안일테니...) 소설에서는 꽤 길게 다루어지고 있다.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옛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남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하는 과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고 넘어간 만큼) 흥미로왔다. 

 

  “... 우리는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 자신을 향하여 엄혹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타자를 향하여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의사 아내의 시선을 닮고 싶어진다. 때때로 의사 아내의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히기도 하지만, 그 비수가 가슴을 뚫어버리고 그곳에 따뜻한 타자라는 새살이 올라오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헐어지고 다시 올라가는 감성의 건물, 인간의 도시야 말로 바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닐까 싶어진다. 

 

  “...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곳 ‘눈먼 자들의 도시’는 폐허이면서도 이제 막 시작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던 우리의 도시가 실은 매트릭스였을 뿐이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눈이 먼 상태였으며 눈이 멀고 나서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소설 속의 진실은 소설 밖의 내 눈마저 따끔거리게 한다. 내 안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힘을 얻었다고나 할까... 

 

 

주제 사라마구 / 정영목 역 /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 해냄 / 472쪽 / 1998, 2007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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