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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28. 2024

《파리일기》정수복

울화를 터뜨리고 싶다는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2022년 3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르게 일어나 생유산균 2그램 한 포를 입에 털어 넣는다. 내가 좋아하는 맛으로 아내가 준비해준다. 곧이어 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스테로이드제 네 알과 면역억제제 한 알 그리고 영양제 세 알을 한꺼번에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러고 있는 사이, 고양이 들녘과 고양이 들풀의 울음 소리가 내 다리 사이를 8자로 가로지른다. 두 마리 고양이는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나는 두 마리 고양이를 밟지 않기 위해 애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든 어떤 일을 겪게 된다. 그 일들은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언제나 나의 몸에 모여들기 때문에 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다. 이처럼 내가 겪게 되는 일들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자세히 기억나지만, 조금 오래되면 흐릿해지고, 이미 멀어지고 나면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일기를 쓰면 오래지 않은 일은 더욱 자세히 기억나고 조금 오래된 일도 흐릿해지지 않으며 이미 멀어진 일도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므로, 당연히 그걸 늘이거나 줄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겪는 일들은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므로, 그 경험을 상세히 기억하거나 간략히 덜어내는 것은 오직 내가 할 노릇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것인데, 그 일들은 하루라는 시간과 이어져 있고, 하루는 한 달과 이어져 있으며, 한 달은 한 해와 이어져 있다. 이렇게 일기를 씀으로써 저 하늘이 나에게 정해준 목숨을 끝까지 남김없이 살며 하나도 폐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pp.311~312, <유만주, 『일기를 쓰다1 : 흠영 선집』, 김하라, 옮김, 돌베개, 2015, 7~8쪽.> 재인용)


  굿밸런스에서 나온 연어맛과 참치맛의 짜주는 간식을 차례대로 꺼낸다. 들녘의 사료 그릇과 들풀의 사료 그릇에 조금씩 짜준다. 고양이들은 묽은 액상고형의 이 간식 제품을 건식 사료와 함께 흡입하는데, 나는 특히나 고양이 들풀이 사료를 이빨로 깨물 때 발생하는 아그작 소리를 좋아하여 흐뭇하게 듣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마도 내가 일어나 십여 분 동안의 일기를 쓴다면 매일 매일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간도 순서도...


  “산책을 마치고 르네 코티 거리 쪽으로 난 공원 출입구로 걸어 나와서 88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당페르 로수로 역에서 내려서 다시 지하철 6번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란은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열리는 크리스틴 므니에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뢱상부르 공원 앞의 메디시 거리에 있는 크리스틴의 집으로 종강 파티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 후에는 한국에서도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대리교사 노박>을 보고 대인과 ‘세계인권선언’에 나오는 단어를 공부하고 헤르만 헤세의 『무위無爲의 예술』이란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라디오의 일기예보에 따르면 내일 오후에는 햇빛이 환하고 기억이 25도 정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p.36)


  아내가 먼저 피트니스 센터로 떠난 다음, 나는 앱을 켜고 체중계에 올랐는데 어제보다 1킬로그램이 늘었다. 병증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늘렸고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에는 식욕 상승이 있다. 피트니스 센터로 가는 길에 문을 연 프렌차이즈 커피숍의 조각 케이크를 눈여겨 보았고, 아내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는 이제 막 문을 연 횟집의 창가 쪽 식탁에 올려진 회 접시를 살폈다.


  “경청, 잘 듣는 일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과 가슴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며 그 사람의 영혼과 교감하는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확장시킬 수 있는 듣기야말로 가장 높은 듣기의 경지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주의 깊게 들은 내용은 자기 속에서 어떤 변용의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자신이 살아가고 말하고 글쓰는 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p.152)


  점심은 샐러드를 먹는 것으로 참았지만 과자 한 봉지를 우유와 함께 곁들였다. 식사 후에는 《관종의 조건》과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라는 두 권의 책 중 어느 쪽을 읽을까 고민하다 그만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다음에는 크리스타잉 보뱅의 《환희의 인간》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긴 하지만 에세이 형태를 띠고 있는데, 파스칼 키냐르를 저절로 떠올리게 되었다.


  “화는 생겨났다 없어지지만 증오심은 한 번 생기면 지속되고 강화되며 잘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단 증오의 감정에 휘말려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한 상태에 떨어지는 상황을 피해가야 한다. 그것은 악마의 유혹이다...” (p.258)


  그건 그렇고 요즘의 매일 매일은 대선 이후 생겨난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분투의 나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페이스북에 끓어 넘치는 정치적 울화 가득한 텍스트들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치란 것은 무릇 우리네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데, 이렇게 맨날 정치적 울화를 발설하다가는 급기야 정치를 위하여 존재하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껏 울화를 터뜨리고 싶다는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다.



정수복 / 파리일기: 은둔과 변신 / 문학동네 / 315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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