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눈 맞추고 싶어지는 봄에 즈음하여...
아내와 나는 봄이면 한 번쯤은 동물원을 찾는다. 게다가 일을 하지 않고 지낼 무렵의 나는, 아내가 없는 한 나절을 보내는 하나의 방편으로 주중에도 문득 동물원을 찾고는 했다. 평일 한낮의 동물원에는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을 제외한다면 별다른 기척을 내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항상 충만한 여유로움으로 산책을 감행할 수 있었다. 주말의 동물원이 온전히 사람의 차지였다면 주중의 동물원은 조금쯤 동물의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텅빈 것 같은 동물원을 떨어지는 벚꽃의 속도로 돌아다니면서 많은 동물들을 오래도록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바라보고는 했는데, 그 중에 코끼리도 있었다.
“... 인간과 코끼리 사이의 엄격한 구분은 이제 핀란드에서 최종적으로 그 효력이 발휘되었다. 코끼리는 원하더라도 무대에 서서는 안 되었다. 공연은 이제 인간에게만 허용되었다...”
아르토 파실린나의 신작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동물원의 코끼리, 가 아니라 서커스의 코끼리, 그것도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를 잃은 어린 코끼리의 여행기이다. 물론 어느 정도 우화의 꼴을 하고 있지만 완전하지는 않아서 코끼리는 코끼리일뿐, 이 여행의 주체는 코끼리의 보호자인 루치아이다. 그렇게 루치아와 코끼리 에밀리아의 기나긴 여행은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서둘러 진행된다.
“코끼리는 커다란 머리를 갖고 있는데, 뇌수를 감싸고 있고 두개골은 해면 같은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 얇은 뼈로 되어 있어요. 빈 공간은 부분적으로 점막으로 덮여 있는데, 후각을 담당한답니다.”
그렇게 루치아와 에밀리아는 핀란드를 떠나 러시아를 향하고, 그곳에서 파트너인 이고르를 만나 함께 공연을 하고, 기차여행을 하며 루치아와 이고르가 결혼을 한다. 하지만 다시 핀란드로 돌아오려는 루치아와 이고르는 결국 헤어지고, 핀란드로 돌아와서는 자칫 에밀리아를 도살해야 하나 망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농부 오스카리와 그의 아내 라일라, 그리고 농부 파보와 수의사인 소리요넨 등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연을 만나 루치아와 에밀리아는 아프리카 고향땅으로의 긴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코끼리의 눈은 연하고 긴 속눈썹으로 덮여 있어요. 이 속눈썹 덕분에 코끼리는 어쩐지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거든요. 그러니까 코끼리들은 어쩐지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거든요. 그러니까 코끼리들은 울 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서 많이 논의가 된답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현대의 한 켠, 어디에 있어도 눈에 쉽게 뜨이는 코끼리 에밀리아와 그러한 에밀리아를 자신의 가족처럼 혹은 동반자처럼 느끼고 그 느낌대로 다루는 루치아의 우정 혹은 가족애로 이루어진 소설은 큰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지만 여운 남는 재미를 준다. 여기에 그들을 둘러싼 순박한 사람들과 그들이 통과해가는 북유럽의 풍광이 더해지니 이국적이기도 하다.
“윗입술과 코는 긴 코로 형체가 바뀌었어요. 그 안에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원래 입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후각 기관으로 코끼리는 긴 코를 가지고 그 외에도 물체를 만지기도 한답니다. 그것은 동시에 코끼리에게는 잡는 기관, 팔인 셈이지요. 긴 코로 먹을 것을 먹고 물을 마시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심지어 싸우기도 합니다.”
주말에 내린 비에 이어 기온이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봄의 기운을 온통 앗아가지는 못하여 한낮의 양지는 봄내음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또 이 봄에도 동물원을 찾을테고, 그곳에서 코끼리를 보게 되면 나는 아마도 소설 속의 에밀리아를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날렵하지 않아 순박하고 굼뜬 움직임과 그럼에도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선한 눈을 가진 코끼리와 눈 맞추고 싶기도 하다. 이 봄에...
아르토 파실린나 / 진일상 역 / 모기나라에 간 코끼리 / 솔 / 287쪽 / 2007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