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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17. 2024

미셸 우엘벡 《어느 섬의 가능성》

초조하지만 끈기있게 읽어가는 미셸 우엘벡의 가능성...

  “더는 못 견디겠다. 너무 고통스럽다. 이제 그만. 끝이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지쳐 버렸다...... 나는 매듭을 지으려고,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흔적, 자기 자신에게조차 당혹스러운 거추장스러운 존재, 요컨대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을 존재의 흔적을 지워 버리려고 시도한다. 내 삶은 행복하지 않다. 내 나이 올해 마흔일곱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끝내고 자신의 홈피에 위와 같은 요지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조금은 곤혹스러운 소설 읽기를 모두 끝마치고 난 뒤, 소설의 옮긴이가 옮겨 놓은 저 글을 읽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나는 아직 글을 쓰는 일에서 거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나이 겨우 마흔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가의 마음 또한 조금은 차갑게 전달된다. 인간으로 사는 일의 힘겨움은 글을 쓰는 자와 글을 읽는 자를 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조금 거칠게 훑어보자면 소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다니엘의 사랑 이야기 혹은 다니엘은 어떻게 신인류의 조상이 되어가는지를 따라가는 부분과 그러한 다니엘로부터 시작된 신인류 혹은 다니엘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24와 다니엘25의 끊임없는 논평의 부분, 그리고 안전한 기지를 떠나 세상을 향한 다니엘25의 여행인 에필로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코미디 쇼를 기획하고 직접 출연하여 큰 인기를 누리게 된 다니엘은 그러한 자신의 인기를 이용하여 여러 여자들과 무차별적인 사랑을 나눌 수도 있었고, 또 어느 정도는 그렇기도 했지만 이자벨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며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돌연 다니엘은 이자벨과 자신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느끼게 되고, 이미 인생의 정점을 지난 시기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둘이 나누는 고독은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지옥이다. 대부분의 경우, 부부의 삶에는 사랑이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광신적인 믿음 속에 당분간 덮어 두기로 마음먹는 몇몇 디테일, 몇몇 불협화음이 처음부터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문제들은 침묵 속에서 몇 년 동안 서서히 곪다가 기어이 불거져 공동생활의 모든 가능성을 파괴하고 만다...” 

 

  하지만 이렇게 꺼져버릴 것 같았던 사랑은 불씨는 에스더라는 스페인 아가씨의 입김을 통하여 다시금 화악 살아나게 된다. 첫눈에 에스더와의 미래까지를 훤히 내다볼 수 있었던 다니엘이지만 그는 그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다. 자신이 얼마나 처참하게 될지를 내다 볼 수 있는 나이이지만 그의, 인간의 힘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탄생 그리고 죽음의 운명 앞에 그는 고분고분해지고 만다. 

 

  “..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결국 사랑 때문에, 아니 그보다는 사랑의 부재 때문에 죽게 된다. 요컨대 그것은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이다. 그렇다, 많은 것들이 첫 몇 분 만에 결정되고, 죽음의 과정은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된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다니엘의 사랑과 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동시에 다니엘의 또다른 행보는 신흥 종교를 따라 이루어진다. 엘로힘교라고 불리는 (아무래도 외계인 엘로힘을 믿고, DNA를 이용한 생명체의 창조에도 적극적인 ‘라엘리안 무브먼트’를 염두에 둔 것 같은) 이 단체에 저명인사의 자격으로 참가한 다니엘은 이후 예언자의 죽음과 뱅상이라는 새로운 예언자의 출현 (예수의 재림을 닮은), 학자와 형사와 익살꾼으로 이루어진 고위층들과의 비밀 공유 등을 거치며 새로운 다니엘 혹은 신인류의 창조에 기여하고 이러한 종교의 부흥을 기록하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 미래의 인간은 성인의 몸으로, 열여덟 살의 몸으로 곧바로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연구가 바라는 만큼 빨리 진행된다면, 그 모델은 계속 재생될 것이고, 그들은, 그리고 여러분과 저는 그 이상적인 형태로 영생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를 통하여 이제 엘로힘교를 통하여 신인류가 창조되고 그렇게 현존하는 마지막 인류 중 선택받은 자들의 DNA를 통하여 끊임없이 복제되어 출현하는 다니엘의 후손 다니엘24와 다니엘 25가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영원히 계속되는 다니엘로서의 삶의 한 챕터로 존재하며, 계속해서 그 첫 챕터에 대한 고찰을 제 삶의 숙제로 삼는 행보를 지속한다. 그러나... 

 

  “... 다니엘1은 내 안에서 다시 살고, 그의 몸은 나를 통해 다시 현현된다. 그의 생각들이 내 생각들이고, 그의 기억들이 내 기억들이다. 그의 존재는 실제로 나를 통해 연장된다. 인간이 자손을 통해 연장하고자 꿈꿨던 것 이상으로. 하지만 내 삶은 그가 살고자 했던 삶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리고 이제 다니엘25는 다니엘1으로부터 2천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140억이던 지구의 인구가 7억으로 줄어드는 인위적인 재해를 겪고, 바깥 세계의 야만인류와 구분되는 보호받는 신인류로서의 삶의 공간을 벗어난다. 인류와 신인류, 그리고 <지고한 누이>에 의해 예언된 또다른 미래인이라는 잘 짜여진 틀로부터 벗어난 다니엘25는 이제 힘겹게 세상 속을 향한다. 

 

  “... 그리고 사랑을, 모든 것이 쉬운, / 모든 것이 순간에 주어지는; / 시간 한가운데 존재한다 / 어느 섬의 가능성이.” 

 

  종교와 과학이, 성과 속이, 사랑과 섹스가, 동물과 식물이, 남자와 여자가, 노인과 젊은이가, 경배와 질투가 마구 뒤섞인 소설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니엘25가 위험천만함을 무릎쓰고 세상을 향하는 호기심의 마음을 접을 수 없듯 소설을 중간에서 놓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어떤 메시지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에도 관심이 없는, 그저 무심하게 인간 행위의 모든 어리석음을 향하여 염세적으로 질타하는 듯한 작가의 눈빛에 만족할 따름이다. 

 

 

미셸 우엘벡 / 이상해 역 / 어느 섬의 가능성 (La possibillite d'une ile) / 열린책들 / 478쪽 / 20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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