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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3시간전

고규홍 《나뭇잎 수업》

오늘 눈 내렸어도 대세는 여전히 봄이니...

*2022년 3월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랜만에 북한산 자락길을 걸었다. 작게 비가 내리는 통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방향을 그리로 잡은 김에 계단을 밟았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서 오른쪽을 보았는데 안산, 인왕산, 북악산 끄트머리에 흰 눈이 내려 앉은 것이 보였다. 거기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겨 북한산의 문수봉이나 보현봉이라 짐작되는 곳도 하얗고 아직 구름에 잠겨 있기도 하다. 잠결 페북에서 본 눈 내리는 동영상이 꿈이 아니었다, 3월 중순이잖아...


  “... 광합성이 아니라 해도 나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나뭇잎은 분주히 움직여야 합니다. 쉴 짬이 없습니다. 햇살이 들지 않는 밤에도 잎은 움직입니다. 광합성을 하지 않을 때는 나무도 호흡을 해야 하거든요. 동물과 마찬가지로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게 호흡입니다. 광합성이든 호흡이든 나뭇잎은 숱하게 많은 기공을 통해 공기를 교환하느라 분주합니다... 잎은 공기 중에 수분을 내보내는 증산작용도 합니다.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립니다. 일생동안 뿌리가 닿은 흙에서 잎이 빨아들이는 물의 양은 엄청납니다... 나무는 줄기 표면을 비롯한 다른 부분을 통해서도 물을 내보내지만, 90퍼센트의 수분은 나뭇잎을 통해 내보냅니다. 나무 그늘에서 시원함을 느끼는 건 단순히 나무가 햇살을 가려주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증산작용을 통해 수증기가 기화하면서 나무 주변을 시원하게 하는 거지요... 나뭇잎의 증산작용은 광합성과 연결돼 있습니다. 광합성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려면 잎의 표면적이 넓은 게 좋겠지요. 이때 넓은 표면에 햇빛이 닿으면 손실되는 물이 더 많아질 겁니다. 그런데 광합성에는 햇빛만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도 필요합니다. 이산화탄소를 엽록소까지 운분하려면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여야 하는데 넓은 잎에서 물이 많이 증발하면 이산화탄소를 녹여낼 물이 모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잎은 또다시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려야 하지요. 다시 말하자면 햇빛을 모으면 물이 줄어드는데,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려면 물이 더 필요하다는 상반된 결과가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햇빛과 이산화탄소가 물을 활용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과정에서 증산작용은 두 활동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pp.19~20)


  절대, 나이가 먹은 다음 나무며 꽃이며 풀에 관심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무와 풀과 꽃을 설명하는 다양한 백과사전류의 책을 구비한 것은 벌써 오래 전이다. (얼마나 오래전인지 지금은 그 책들을 찾을 수도 없다. 그래서 계속 사게 된다.) 다만 그렇게 머리로 익힌, 2D 평면의 그림과 사진으로 익힌 것들과 실제 마주치는 것들 사이에 큰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다. 


  “광합성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며 햇빛과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해 당을 만들어내는 작용입니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배출되지요. 그러니까 산소는 광합성의 노폐물인 겁니다... 광합성을 이야기할 때 함께 짚어봐야 하는 건 호흡이겠지요. 호흡은 광합성의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작용입니다. 광합성은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서 작용을 마친 뒤에 산소를 노폐물로 배출하지만, 호흡은 거꾸로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습니다. 광합성을 통해 담아냈던 빛에너지가 호흡 과정에서 다시 풀려서 빠져나가는 겁니다. 광합성과 호흡은 이처럼 반대 방향으로 흐르며 영원한 균형을 이룹니다. (pp.47~48)


  지난 해부터 산을 올라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야 눈에 보이는 녹색 것들 중 제대로 호명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도 없구나, 한숨 짓게 되었다. 숲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무성하게 드리운 아피라들 사이로 피해내면서도 그것을 무슨 나무의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꽃들은 스마트폰의 검색 도구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무의 명칭을 알아내는 일은 달랐다. 


  “굴참나무잎의 뒷면은 별 모양의 회백색 털이 촘촘히 나 있어서, 앞면의 선명한 초록빛과 달리 뒷면은 회백색이 뚜렷합니다. 또 갈참나무잎의 표면은 반짝거릴 정도의 광택이 나는 초록색인데, 굴참나무처럼 잎의 뒷면은 회백색입니다... 잎의 뒷면에서 회백색이 뚜렷하게 나는 굴참나무나 갈참나무가 군락을 이뤄 자라는 숲에 바람이 분다면 선명한 초록빛과 회백색이 바람 따라 출렁일 겁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초록의 숲이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의 일부가 뒤집히면서 회백식애 드러나겠지요. 이때 마침 이 자리에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면 회백색 잎에서 빛이 반사되면서 마치 꽃이 무리를 지어 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pp.53~54)


  가을이 되어 나무 데크에 떨어진 도토리들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저마다 고유의 도토리 열매를 떨구고 있었다. 열매가 떨어진 그 나무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나뭇잎이 중요하였다. 그렇지만 자락길 어귀 커다란 표지판에 설명된 이 나무들의 서로 다른 나뭇잎을 머리에 담고 일일이 비교하는 일은 재밌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 나무에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수관기피 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영어로는 ‘Crown shyness’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대개의 숲에서 볼 수 있지만 특히 침엽수 숲에서 보다 두렷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지요... 나무의 빛을 수용하는 부분에서 빛을 알아채고 주변을 인식해서, 곁의 나무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략이죠... 실제로 숲에 들어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주 촘촘히 맞춘 퍼즐처럼 나뭇가지들이 서로의 사이에 아주 좁지만 명백하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광합성을 위한 전략이지만, 수관기피 현상에는 몇 가지 덧붙일 이유가 있습니다. 나무 사이에 거리가 가까우면 바람이 불 때 서로 부딪치며 부러질 수 있고, 또 가까이 붙어 있으면 해충이 옮겨 다닐 통로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건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사람들 사이에 2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어 전염을 막으려 했던 이치와 같은 겁니다.” (pp.274~275)


  이제 겨우 내가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북한산의 대표적인 두 침엽수인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 정도이다. 촘촘하고 똑같이 생겼지만 소나무의 잎은 그 끄트머리에 바늘 같은 것이 두 개가 모여나는 반면, 잣나무의 잎은 그 끄트머리에 바늘 같은 것이 다섯 개가 모여난다. 오늘 눈 내렸으나 대세는 여전히 봄이고, 올해는 보다 많은 나무를 그 잎으로 꽃으로 열매로 줄기로 껍질로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규홍 / 나뭇잎 수업: 사계절 나뭇잎 투쟁기 / 마음산책 / 288쪽 / 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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