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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18. 2024

곤 사토시 감독 <크리스마스에 기적이 일어날 확률>

크리스마스의 유흥, 저 너머에서 벌어지는 기적...

  크리스마스의 기적 따위를 믿을 나이는 성큼 지나버렸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가 간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스템의 불합리와 사람들의 몰이해, 그리고 이런 것들이 똘똘 뭉쳐진 듯한 대한민국 사회를 향하여 되먹지 않은 험담이나 늘어놓으면서 연말을 보내고 있자니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답답함을 가득 안고, 누구 좋으라고 만든 것인지 모를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신 술의 숙취 가시지 않을 때 보면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도쿄에 거주하는 세 명의 노숙자, 긴과 하나와 미유키는 나름 그룹을 지어 다니며 사이좋게(?) 지낸다. 목사의 설교를 억지로 듣고서 밥을 탄 전직 경륜 선수라는 긴과 여자가 되고 싶은 아줌마 아저씨인 하나는 건물 옥상에서 침이나 찍찍 뱉어대는 철없는 가출소녀 미유키에게 먹을 거리도 갖다 줄 정도... 

 

  그리고 이 사이좋은 노숙팀은 하얀 눈으로 가득한 쓰레기 더미에서 아기 키요코를 만난다. 경찰서에 데려다주자는 긴의 말을 무시한 하나는 하늘이 내려준 기적같은 아기를 끌어안고 어쩔줄 몰라하다, 이 아기의 부모를 만나러 갈 결심을 한다. 그렇게 각자의 우여곡절과 아픔을 가슴에 품은 이들 세 사람은 따로 또 같이 아기 돌려주기 프로젝트에 나선다. 

 

  그렇게 아기를 데려다주는 틈틈이 이들은 조폭을 도왔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긴은 자신을 닮은 노숙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가하면 동네 양아치에게 얻어맞고, 하나는 자신이 트렌스젠더로 일하던 바에 찾아가고, 미유키는 건너편 지하철에서 자신을 발견한 아버지에 놀라 도망치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상대방에게 털어놓고, 또 그 과거의 사람들 혹은 과거의 사실들과 마주친다.

 


  그러는 사이 키요코를 향한 이들의 애정은 커져만 가고, 아이와 함께 발견된 사진을 단서 삼아 드디어 아기의 부모라고 짐작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 사진 속의 부모라고 생각된 남자는 도박중독자일 뿐이고, 여자는 삶에 지치고 우울증이 깊은 아기 도둑일 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건물 옥상에서의 숨막히는 마지막 순간... 미유키와 하나, 그리고 긴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우리들 모두의 삭막한 한 곳을 구원한다.

 

  영화는 애니매이션지만 인물들의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표정들을 제외한 나머지 배경들은 거의 실사에 가깝게 스케치 되어 있다. 때문에 만화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극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펑 하고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코끝이 찡해지는 정도의 여유를 제공할만큼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넘실되는 크리스마스의 유흥,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우리들의 모습을 한 번쯤 생각하는 것도 좋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이 일어날 확률 (東京ゴッドファ-ザ-ズ, Tokyo Godfathers) / 곤 사토시 감독 / 곤 사토시, 노부모토 케이코 각본 / 에모리 토루, 오카모토 아야, 우메가키 요시아키, 이즈카 쇼조 목소리 출연 / 91분 / 20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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