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로 가득한 문학판을 향해 날리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식의 냉소...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로 불리우는 미야자와 겐지와 일본 포스트모던 문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만남. 물론 이미 1933년에 죽은 미야자와 겐지와 1951년생인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종의 헌정 소설집인 셈이다. 두 권으로 나뉜 소설집에는 (아마도) 동화작가이며 시인인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을 토대로 하여(어쩌면 제목만을 차용한 듯도...) 마구잡이식 소설쓰기의 달인인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스물 네 편의 소설(혹은 동화 혹은...)이 실려 있다.
티비를 보다가 돌연 코끼리를 키우기로 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긴 오츠베르씨의 이야기인 「오츠베르와 코끼리」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기억을 잃는대신 그 기억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첩’을 이용하는 가돌프의 끊임없이 돌고돌고돌고 도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가돌프의 백합」으로 끝이나는 소설집의 소설들은 엉뚱하고 몽롱하고 우스꽝스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하다. 게다가 “그것이 그 남자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때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베지테리언 대축제」)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이제 막 시작하는 소설에나 어울릴법한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이라니...
SMAP의 맴버인 기무타쿠에게서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영감을 받아 죽기로 작정을 한다거나(「기아 진영」),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그나마 고양이들에게 고용되어 안심을 하고 (「고양이 사무소」), AV를 찍기 위해 세계 명작들을 섭렵하는 (「주문 많은 요리점」) 괴상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소설집은 그런데 중독성이 있다고나 할까...
“...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던 문학’이 그 권위를 발휘할 터전을 가지고 있던 시대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런 ‘터전’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런 ‘터전’은 없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모두가(라고 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일부의 사람들이) 그러한 권위가 ‘사기’라는 것을 알아채 버린 것이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일본의 소설>
애초에 문학이 품고 있는 허구로서의 권위에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별다른 의미부여를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문학적이라고 표방하고 있는 듯한, 유머와 몽상과 어처구니없음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3년간 잡지에 연재를 했으며 작품집의 원제는 「미야자와 겐지, 그레이티스트 히츠」이다) 써내고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이 읽을 수 있다. 모든 작품이 재밌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름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 양윤옥 역 / 겐지와 겐이치로 (미야자와 겐지, 그레이티스트 히츠, ミヤザワケンジ·グレ-テストヒッツ) / 웅진지식하우스 / 310쪽, 291쪽 / 2007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