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잭슨 《뼈 모으는 소녀》

살짝 무서운 몽상 혹은 오만가지 상상을 향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열 개의 안스러운 이야기라는 원제를 지니고 있는 믹 잭슨의 단편집이다. 평이한 듯 평이하지 않고, 엽기적인 듯 엽기적이지 않으면서도 또다른 상상의 일면, 아니 몽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집이다. 삽입된 데이비드 로버츠의 그림에서도 느낄 수 있듯 마치 팀 버튼의 영화 세계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지하실의 보트」.

오래전 군대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모리스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평생을 바쳐 일을 한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의 호수 나들이를 떠올리며 배를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하실에서 드디어 배를 완성시켰을 때 그는 출구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그 배를 바깥으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장마에 지하실로 물이 들어차면서 잠깐 노를 젓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모리스 씨는 다음 해 장마를 기다리게 되는데...

「레피닥터」.

“우연이란 세상이 때때로 당신의 관심을 끌려 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이따금 한번씩 당신을 일으켜세워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어떤 우연은 너무도 하찮아서 눈썹 하나 까딱할 가치도 없지만, 또 어떤 우연은 어찌나 대단한지 그대로 이루어지기만 하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도 있다.” 우연히 박물관에서 박제된 나비를 발견하게 되는 백스터 캠벨, 그리고 또 우연히 고물상에서 레피닥터(나비 복원 전문가)의 수술도구를 발견하게 되는 백스터 캠벨의 이야기... 그리고 되살려진 나비들과 나비들의 복수까지...

「피어스 자매」.

바닷가 오두막에 살고 있는 롤과 에드나 피어스 자매의 이야기. 선의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여기에 외모를 향한 잘못된 선입견이 낳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결말도 함께...

「외계인 납치사건」.

대한민국 초딩들의 무서움과 비슷한 것이 여기에도 있구나... 수업시간이 끝나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던 시어도어의 작은 거짓말 하나가 어떻게 일파만파 외계인의 지구 침공과 지구인 납치로 이어지는지를 바라보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아이들이란...

「강 건너기」.

장의업을 하는 우드러프 가족, 늙은 우드러프와 그의 세 아들인 버논과 얼 그리고 레너드의 고달픈 관 나르기 작업... 길을 잃은 이들이 교회를 향하여 전진하면서 강을 건너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그 강마저 제대로 건너지 못하여 관과 함께 물에 빠지게 되는 광경이 우스꽝스럽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핀과 핀의 엄마 사이의 작은 다툼이 어떻게 발전되는지... 엄마를 두고 집을 나선 핀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숲으로 들어가고, 아예 그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한 마리 개와 우정을 나누고, 아련한 기억으로 다시금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오지만...

「뼈 모으는 소녀」.

모두와 마찬가지로 땅 파기를 좋아하던 소녀 기네스 젠킨스... 소녀는 그렇게 땅을 파다가 우연히 뼈를 발견하게 되고, 이제 아예 그렇게 뼈를 모으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한다. 이미 죽은 자와 아직 산 자 사이를 나지막하게나마 연결시켜주는 뼈 무더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은둔자 구함」.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자일스와 버지니아 자비스 부부는 어느 날 발견한 동굴에 기거할 은둔자를 구한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삶의 무미건조함을 달래기 위해 택한 어리석은 취미는 결국 그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탈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잠에 빠진 소녀」.

꾸벅꾸벅 조는 버릇이 있던 소년은 어느날 부터인가 하염없는 잠에 빠져들어버린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이야기인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는 물론 아닐테고...) “... 잠듦과 깨어 있음이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잠깐 들었던 그 고독한 순간만 빼놓고 소년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 무시무시한 고독의 순간에 소년은 자기가 어떻게 하면 의식의 세계로 돌아올지를 알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버린 그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지...

「단추도둑」.

코트를 좋아하는 셀마 뉴턴은 어느 날 말에게 자신의 코트 단추를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빼앗긴 자신의 단추를 찾기 위한 셀마의 고군분투가 시작되는데...

몽상과 블랙 유머가 버무려진 유쾌하고 짧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작품집이다. 오만가지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어떤 식으로든 (영화든 만화든 소설이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게끔 다듬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행복하다. 읽으면서 속속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의 엉뚱함에 전염되는 재미도 좋다.

뼈 모으는 소녀 (Ten Sorry Tales) / 믹 잭슨 /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 문은실 역 / 생각의나무 / 215쪽 / 20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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