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픽션마저 거부하는, 혁신적인 자정의 픽션을 꿈꾸며...
소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을 편견이라고 외치며 전면적인 선전포고라도 하는 것만 같다. 각각의 소설들이 가지는 발상이 독특하고 불온하며 괴기하고 유머러스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기존의 젊은 작가들 또한 구사하는 방식인데, 작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사를 무시하거나 평론과 같은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마치 소설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과도 같다.
「논쟁의 기술」.
“논쟁이란 이견이 있는 사실에 대해 상대와 겨루는 과정이 아니다. 역으로, 상대와 겨루기 위해 이견이 있는 부분을 모색하고 그걸 극대화시키는 과정이다... 논쟁의 성과는 단 한 사람의 것이며, 다른 이는 오직 패배자로서만 기억된다. 그러므로 논쟁에서는 상대를 일부러 무시하고, 약 올리고, 극도로 불안하게 만듦으로써 실수를 이끌어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논쟁에 대한 기술을 실전처럼 익히며 자라 이제 대학 교수가 된 주인공의 인생을 건 논쟁 이야기이다.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논쟁의 기술을 이용하려다 그것에 역으로 당하고,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논쟁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
「날개」.
“... 반세기 전, 거인은 너무 보고 싶어서 날아왔다고 대답했다. 날아왔다고? 그 덩치로?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자기 가슴속에 영원히 묻혀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SF 장르를 택하고 있지만 SF 소설이라고 부리기에는 뭣하다. 인간의 수명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 미래에 살고 있는 한 여자, 그리고 그 여자가 사랑했던 거인과 같은 남자의 이야기이다. 현재와 근미래를 오가는 상상력이 다채롭다.
「노란 육교」.
“... 어쨌든 사람들은 세상엔 죽은 존재를 위한 부분도 존재함을, 또 그 부분은 우리와 멀리 떨여져 있지 않으며 심지어는 우리 삶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간혹 부드럽게 겹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의 아이디어를 읽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된 길... 그 길은 망자들이 현세를 떠나는 일종의 게이트임이 드러나고, 이제 그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길은 산 사람들을 위한 관람장 노릇을 하게 되는데...
「물속의 아이」.
“흐릿해지는 동공으로 본 환영 혹은 무뎌져가는 피부로 접한 환각의 그것은 언젠가 아이가 막 장난을 시작하던 시절 꿈에서 본 가볍게 반짝이는 수면이었으니 그 아래 고요한 물 속에 아이는 누워 있는 것인데 ... 마침내 그들을 쓰러뜨린 사연은 무대 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소도구들 그리고 음향을 몰아 시커멓게 덮쳐오는 장막 너머로 깨끗이 사라져갔다.” 제 어미의 사랑을 얻기 위한 한 아이의 끝없는 노력이 애달프다. 스스로에게 충격을 가하고, 그 충격을 통해 어미의 시선을 끌고, 이러한 충격 요법을 반복하고 그러다 가정은 파탄이 나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기 소설(Initiation story)이 아니라 성교를 중심으로 세계의 원리와 끝없는 갱신을 해명하고자 한 알레고리(Allegory) 소설이다... 작품의 의의는 재고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걸 도덕적이고 희망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선량한 욕망과 투쟁해야 한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단편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분석 시도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품들에 대한 굉장히 쓸데 없어 보이고, 허황된 연구들을 통하여 기존의 소설은 폭파되고 전혀 새로운 의미의 소설이 탄생하고 있다.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무료함에 성기를 잘라보았더니 피가 많이 흘렀다. 허둥대며 수건으로 도려낸 자리를 감싸자, 하얀 수건에 붉게 물들어가는 피의 눈부신 무심함이 과연 무료하지 않아 좋았다.” 단편이라기보다는 엽편에 가깝고, 소설이라기보다는 그저 산문에 가깝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생활에 지쳐 성기를 잘라낸 한 사내의 심겨 들여다보기...
「진실의 방으로」.
“모든 소음이 사라진 방. O는 거대하고 고동치는 진실의 심장, 아니 째깍째깍 움직이는 자신의 시계 초침 소리를 들었다...” 무엇을 은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일종의 고문이 자행되는 지하 창고와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진실에 대한 공방... 결국 진실은 누군가가 원하는 그 무엇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우리가 진실이 내는 소리라고 믿었던 것들은 그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시간이 흐르는 소리였을 뿐이라는 것인지...
「두유전쟁」.
“... 모든 수치는 정확히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생긴 이십대 청년의 머리에서 하루 이백만 배럴의 원유에 해당하는 고농축 유분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가장 강한 스토리라인... 머리에서 원유가 나오는 청년 성수범을 사이에 둔 한국과 미국의 쟁탈전...
소설집의 제목 『자정의 픽션』은 박형서가 꿈꾸는 새로운 허구를 지칭하는 용어인 것 같다. 작가는 지금까지의 소설, 혹은 픽션이 가지는 허구들과 자신이 꿈꾸고 지향하는 허구를 구별하기 위해서인 듯, ‘자정의 픽션’이라는 제목을 쓰고 있다. 기존에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지만, 이런 것들도 소설이 되고 이런 허구들도 소설의 기술로 구사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박형서 / 자정의 픽션 / 문학과지성사 / 282족 / 2006 (2006)
ps. 사실 소설 내부보다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각각의 소설을 쓰게 된 배경 이야기가 더 재밌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논쟁의 기술」은 소설 창작을 강의하던 중, 학생들에게 소설이 씌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에서 집핍되었으나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별로였고, 「날개」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착안했으며, 「노란 육교」는 작가가 기르는 고양이 로나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나왔으며, 「물속의 아이」는 오래전에 썼다가 처박아뒀던 소설을 네 번에 걸쳐 개작하여 나온 것이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논문 형식에 충실한 일종의 패러디이며 그 소설을 음란 소설로 규정하는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고 하며,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은 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쓴 것이라 하고, 「진실의 방으로」에서는 낯설게 하기와 알레고리를 너무 많이 시도하여 후회스럽다고 하며, 「두유전쟁」은 간이 나쁘면 머릿기름도 많아진다는 의학 상식을 입수한 후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