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펭귄이 지닌 참을 수 없이 은밀한 매력...
책을 읽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아, 뤽 자케의 영화 《펭귄-위대한 모험》을 보려고 했었는데, 그만 이래저래 미루다 아직까지 못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영화를 보았더라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샤라는 이름의 펭귄에게 좀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묘사만으로도 이렇게 펭귄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만약 내가 영화를 봤더라면 얼마나 훨씬 흠뻑 빠질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 펭귄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기분을 쉽게 구분해내요. 게다가 원한을 아주 오래 품어요. 물론 친절을 베풀면 그것도 오랫동안 기억하지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펭귄의 심리상태는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할 수 있소. 더 영리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비밀이 많고…… 펭귄은 자신의 감정과 애착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펭귄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 같은 역할을 위해 탄생한 것은 아니다. 펭귄 미샤가 의인화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펭귄 미샤가 사건의 핵심에서 실질적으로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펭귄 미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밥그릇에 떨어지는 언 생선을 먹거나, 자신의 방석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간혹 주인의 무릎에 퇴화된 날개를 얹거나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대신하여 독특한 페르소나를 뿜어내는 펭귄 미샤는, 책을 읽는 내내 3차원 영상처럼, 머리 위의 오로라처럼 묘한 존재감을 보인다.
실제로 소설은 하드보일드한 추리물에 가깝다. 주인공인 빅토르는 여자 친구와도 헤어진 채 망해가는 동물원으로부터 구입한 펭귄 미샤와 함께 살아가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누추하기 그지없는 삶을 근근히 이어가던 빅토르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어느 날 자신이 쓴 짧은 소설을 신문사들에 돌린다. 그리고 수도首都 뉴스 신문사로부터의 호출... 빅토르의 삶에 갑작스런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우습게도 신문사로부터(혹은 신문사의 편집장으로부터) 의뢰받은 죽은 자를 위한 조문弔文 (아니 죽은 자가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한 조문) 작성이라는 일거리다.
“가을은 조문弔文을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과거를 탐색하는 계절, 시들어가는 슬픔의 시간이다...”
처음에는 신문에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인물을 하나 선정하여 ‘십자가’라고 이름 붙여진 미래의 조문을 쓰는 것이 빅토르의 일이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를 받으며 매우 만족스럽게 진행하던 이 일이 이상하게 방향을 선회하는 것은 그가 미리 써 놓은 조문 속의 주인공인 국회의원이 정말로 죽음을 맞이하면서부터이다.
이제 소설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펭귄 아닌 미샤(아마도 마피아의 보스라고 추정되는)가 등장하여 새로운 조문을 부탁하고, 어느 날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며 펭귄 아닌 미샤가 자신의 딸 소냐를 맡기고 떠나가고, 그 사이 세르게이라는 경찰관 친구를 사귀고, 소냐를 보살펴줄 유모로 세르게이의 사촌인 니나를 집으로 들이고, 니나와 부지불식간에 동침을 하고, 펭귄 미샤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 동물원의 사육사였던 삐드빨르이 노인을 만나고 결국 그 노인의 후원자가 되고, 삐드빨르이 노인의 장례를 치른 것을 시점으로 펭귄 미샤와 함께 장례식에 참가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펭귄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남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사이 아무래도 자신의 고향인 남극과는 거리가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살고 있는 펭귄 미샤의 일거수일투족이 우울하게 그려지고...
“내가 볼 땐 말이지, 즐거운 펭귄은 만화영화에만 있는 것 같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함께 떨어져 나온 많은 국가들이 그렇듯 우크라이나 또한 만연한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을 터... 작가는 이처럼 자국의 사회 곳곳에 깊숙하게 배어 있는 부정과 부패를 블랙 유머를 통해 (그러한 부정 부패의 몸살, 아니 우울을 앓고 있는 펭귄의 등장으로 집약되는) 보여주고 있다. 메이드 인 우크라이나, 사회파 추리소설(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이라고나 할까... 생뚱맞은 설정에도 불구, 꽤나 재밌다.
안드레이 쿠르코프 / 이나미 이영준 공역 / 펭귄의 우울 / 솔 / 2006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