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터키 총각이 죽은 채로 살아가는 법...
이야기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그래서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는 천일밤을 줄곧 이야기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고, 그래서 소설 속 야샤르 야샤마즈(터키어로 ‘야샤르’는 ‘살다, 생존해 있다’, ‘야샤마즈’는 ‘죽다’라는 뜻이다)는 교도소에서 동료 죄수들에게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에게 갖고 있던 억울한 마음을 다스리고, 드디어 세상의 물정을 깨우치고 카라캅르 나자미씨(검은 장정의 법전을 가리키는 말로, 일면 그러한 국가의 법집행을 비꼬고 있는)와 같은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터키의 국민작가로 불리운다는(오르한 파묵의 작품과는 질감이 좀 다른,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아지즈 네신의 소설에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다. 일단 주인공의 이름부터가 그렇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드러나는 ‘살다’와 ‘죽다’의 조합이라는 아이러니는 그의 입을 통해 조금씩 그의 삶의 이력이 드러나면서 고스란히 풍자와 해학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여기 호적대장에는 아들이 죽었다고 적혀 있소.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는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줄 수 없습니다.”
공립학교가 마을에 생겨 그리로 전학을 가려는 야샤르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니, 그것은 바로 야샤르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 부자는 동사무소의 공무원을 붙잡고 여기 이렇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을 낳아서 키운 아버지가 있는데 어떻게 야샤르가 죽은 사람일 수 있느냐고 항변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앞뒤 꽉꽉 막혀 있기가 대한민국 초창기 공무원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인 이 소설 속의 터키 공무원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야샤르의 아버지 레싯과 어머니 하제르는 1911년에 결혼했는데, 야샤르는 1915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 게다가 야샤르는 1897년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야샤르를 낳은 하제르는 1904년에 태어났다, 며 항변하는 야샤르의 아버지에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하제르 부인의 첫 남편은 죽었죠. 그때 하제르 부인의 의붓아들인 야샤르는 하제르 부인보다 여덟 살 위였고요. 하제르 부인은 남편이 죽자 의붓아들을 데리고 레싯, 당신과 결혼한 겁니다.”
이렇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한 야샤르의 운명은 교도소에 갇힌 동료의 죄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심하게 뒤틀려 있다.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 못간 야샤르였지만 결혼식 전날에는 버젓이 살아 있는 남자가 군대를 회피하려 했다며 병무청에서 소환을 해가고, 그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아버지의 빚과 유산이 문제가 된다. 사사건건 야샤르의 앞을 막는,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관료주의의 경직된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얄밉기 그지없고, 어이없으면서도 울화통이 터지기에 좋다. (앗, 그러고보니 영화 《괴물》에서 자신의 딸의 전화를 받았다며 살아 있음을 주장하는 송강호의 발언을 묵살하는 경찰이 떠오르는군...)
“... 형님들, 제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학교에 가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라고 하더니 군에 입대할 때가 되니 ‘넌 살아 있어’라고 했어요.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고 할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하더니 유산을 상속받을 때가 되자 ‘넌 죽었어’라고 하네요. 그리고 정신병원에 처넣을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하고.”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야샤르는 공무원과 정치인, 이들의 방을 지키는 방지기와 도시의 버스 기사에 이르기까지 순박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멸시하고 이용하려고만 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갖은 고초를 토로하며 감옥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를 하고, 바로 그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은 야샤르는 드디어 감옥에 들어가기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감옥을 나서게 되는데...
“그들이 야샤르의 이야기에 이렇게나 열광하는 이유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샤르와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그들 대부분에게 야샤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공동의 삶이었던 것이다.”
터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도 우리만큼이나(형제 나라가 아니던가...) 관료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이 있었나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사회적 약자를 윽박지르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꼬리를 내리며 자신의 안일만을 도모하는 사람들... 작가는 사회적 약자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야샤르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향한 연민의 눈빛을 보냄과 동시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크고 작은 위세를 부리는 이들을 향해 야유를 보낸다. 아픔을 아프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으로 살뜰하게 쓰다듬어주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묘한 위안을 느꼈을 칠십년대 터키 서민들, 우리들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야샤르의 입담에 빠져보는 푸짐한 재미와 함께 묘한 동질감도 느끼게 된다.
아지즈 네신 / 이난아 역 / 생사불명 야샤르(Yasar Ne Yasar Ne Yasamaz) / 푸른숲 / 496쪽 / 2006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