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그려내는 정밀한 스케치로서의 소설...
「에보니 타워」.
“에보니 타워... 작가는 흑단탑, 즉 에보니 타워를 상아탑, 즉 아이보리 타워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에보니 타워를 현대 미술의 모호한 요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중편 소설이다. 현대 미술 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의 형식에 대한 몰입이 가지는 애모매호라는 특이성을 나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은 구상 화가인 헨리 브리슬리와 그의 책 서문을 작성하기 위해 그를 방문한 추상 화가(로 짐작되는) 나 (데이비드) 사이의 각축을 다루고 있다.
“... 헨리는 죄가 삶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죄는 불합리가 아니라 용기와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행위였다. 그는 필요와 본능에 따라 죄를 저질렀다. 반면 데이비드는 두려움으로 인해 죄를 저지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사람의 각축의 중심에는 헨리와 잠자리를 같이 하며(연로한 헨리가 제대로 된 섹스를 하는지는 미지수이지만) 그의 작업을 돕고 있는 다이애나(생쥐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가 자리잡고 있다.
“... 노인은 과도함, 무자비한 자기중심성, 생각과 감정을 분리시킬 줄 아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데이비드는 그렇지 못했다. 예술이 근원적으로 도덕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은 가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공정치 못한 현실이었다...”
일가를 이룬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섬세한 사랑의 줄다리기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확하다못해 정밀함에 가까운 작가의 묘사들이다. 헨리가 살고 있는 별장, 그리고 별장을 둘러싸고 있는 숲 또는 숲에 이르는 길에 대한 묘사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세하게 되어 있다.
「엘리뒤크」.
현대 예술만큼이나 애매모호하게 끝이 나버린 『에보니 타워』속 데이비드와 다이애나의 순정(혹은 불륜)이 중세 시대 켈트 문학 속의 연애담으로 형질 변경되고,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불쌍한 코코」.
준비한 책을 쓰기 위한 자료들을 가지고 친구의 집에 들른 작가... 그러나 강도가 집에 들어오면서 소설은 묘하게 흘러간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행우를 정당화시키던, 그리고 되도록 품위 있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던 강도는 마지막 순간 돌연 작가의 자료들을 불태워버린다. 도대체 그 강도는 왜... “... 우리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말과 그것의 비밀과 마술과 과학과 예술이 살아남도록 최선을 다했다. 말을 진짜로 파괴하는 것은 개인적인 통제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텔레비전과 시각 매체의 승리와 전반적으로 잘못된 교육, 관리할 수 없는 우리 세기의 사회적 ․ 정치적 역사와 다른 많은 요소들이다...” 그의 자료들을 불태운 것일까...
「수수께끼」.
“메리 셀레스트 호는 1872년 뉴욕에서 이탈리아로 떠났던 배로, 뉴욕 항을 떠난 진 한 달쯤 지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배에는 아무도 없었고 구명보트도 사라지고 없었으나,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정상적으로 보였다. 싸운 흔적도 없었고, 배의 손상도 없었으며, 승객들의 옷가지도 벽장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오직 배에 장착된 항해 도구만 없어진 상태였다.” 바로 이러한 메리 셀레스트 호처럼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존 마커스 필딩 의원... 그리고 필딩을 찾기 위해 경사는 필딩의 주변 인물들, 그의 비서, 그의 아내, 그의 아들, 그의 아들의 애인을 차례대로 만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저 그의 아들의 애인이 들려주는 소설 속의 소설 이야기가 뿌연 안개 속의 가로등처럼 희미하게 소설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구름」.
“사람들에게 없는 것은 지속성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최고의 순간에도 그런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런 식이었다. 나는 B라는 이 일을 해야 해. 그것에 분명한 목적도, 아름다움도, 의미도 없다 할지라도. 그건 그것이 A와 C 사이에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이 소통이 없는 작은 섬들처럼 되어 버렸다. 그 섬들은 그 너머에 있는 섬들로 가는 데 필요한 징검돌이지만, 그 너머에는 다른 섬들이 없었다. 작은 섬들은 자신들의 무한한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한 사람이 1분 안에, 기껏해야 5분 안에 그것들을 모두 건너갔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섬이었지만 또한 같은 섬이었다...” 폴과 애너벨 부부, 그리고 애너벨의 여동생인 캐서린, 그리고 애너벨과 캐서린의 아이들, 그리고 피터와 셀리가 함께 하는 피크닉... 뜬구름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과거의 미술 작품에서 본 듯한 풀밭 위의 다섯 어른과 몇 명의 아이들에 대한 글로 쓰는 정밀한 스케치이다.
존 파울즈 / 정영문 역 / 에보니 타워 (The Ebony Tower) / 열린책들 / 424쪽 / 2006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