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앙 젤러 《누구나의 연인》

진퇴양난에 빠진 남자와 배수의 진을 친 여자 사이의 연애...

by 우주에부는바람

사랑이 시작되면 그동안 자글자글하던 사람들의 인적이 끊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즐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사랑을 불신하기도 한다. 사랑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램프에 담겨 불꽃으로 산화하는 불안감이 대신하게 된다. 그렇게 램프 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연소되고 나면 이제 새로운 추억이 램프 속의 빈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사랑은 때때로 건조한 것... 그러니 퍼즐을 닮은 텍스타일 디자인처럼 혼란스럽지만 결국 정형화라는 종말에 안착하는 사랑을 다루는 소설도 생기게 된다. 플로리앙 젤러의 소설이 그렇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폴란드 서점의 위치를 묻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을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그’ 였지만, ‘그가 자신을 안아 주고, 일을 치르기를’ 기다리며 ‘사랑의 행위 도중 그가 잠시 동작을 멈춘 순간’ 눈물을 보이는 이 여자에게만은 예외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연애 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자유 연애주의자를 자처하던 트리스탕은 그렇게 아멜리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그때부터 끊임없는 갈등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자기 앞의 여인과 또 다른 여인들을 원한다. 자기 앞의 삶과 그와 반대되는 다른 삶을 원하는 것처럼...”


아멜리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 트리스탕은 고뇌한다. 자신의 주변을 유영하는 모든 여인들의 기척에 트리스탕은 흔들린다. 어쩌면 그는 그 여인들을 유혹하는 데에 죄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아멜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데에서 더 큰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자신은 자유로와야 하는데 어째서 지금 아멜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트리스탕은 아멜리와 함께 한다. 그녀가 흘렸던 의문의 눈물 앞에서 그는 연약하다.


소설은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 장인 ‘폴란드 서점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가 트리스탕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고 있다면, 뒷 장인 ‘그녀는 도둑처럼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는 아멜리에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와 트리스탕의 만남에서 그 시작은 누구에게 있었던가 하는 비밀이 풀리고, 아멜리는 어째서 트리스탕에 심하게 의존하는가 하는 이유의 연원이 밝혀진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거짓으로 점철되어버린 시작을 했고, 그들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운명임을 스스로에게만 실토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는 때때로 이중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이중적인 삶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무가치한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그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한 여자와 살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그녀를 속이고 고통받게 하지 않는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듯한 트리스탕과 배수의 진이라도 친 것 같은 아멜리... 트리스탕의 연애와 아멜리의 사랑이라는, 관계의 표피와 속살을 향한 소설의 입질은 진지하다. “르 클레지오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으리라.”고 선언한다는 79년생 (매우 멋지게 생긴) 작가의 작품은 그가 지향하는 (프랑스의) 선배 작가들을 닮으려는 듯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애써 진지하다.


플로리앙 젤러 / 박명숙 역 / 누구나의 연인 (Les amants du n'importe quoi) / 위즈덤하우스(예담) / 175쪽 / 20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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