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후미오 《내 나이 서른 하나》

내 나이 서른 하나, 였을 때의 풍경은...

by 우주에부는바람

내 나이 서른 하나, 였을 때 난 결혼을 했다. 서른 하나가 되자마자 결혼을 한 것은 아니고 서른 하나가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결혼이 결정된 것은 서른 하나가 시작될 무렵이었고, 이후 양가 상견례를 거치고 갖가지 트러블을 일으키고, 그 트러블이 잦아들 즈음에는 벌써 서른 하나조차 끝나가는 중이었고 결혼을 했다. 얼마나 마지못해 하는 결혼이었는지 아내와 나, 두 사람 모두 결혼식 내내 시큰둥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번거로왔을 따름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긴장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대신 태어나 처음인 주례 선생님이 긴장을 하는 바람에 그걸 지켜보느라 오히려 조마조마 했다고나 할까... 서른 하나의 남자가 스물 아홉의 여자와 하는 결혼은 너무나 흔했으므로 의혹의 눈초리 같은 것은 전혀 없었으며, 나는 스물 아홉의 여자를 마치 서른 하나의 여자쯤으로 우러러 보았다.


“옛날부터 계속 묻고 싶었는데, 왜 서른한 살짜리 여자하고만 결혼하죠? 일부러 노린 게 아니에요? ... 아, 그건 그래. 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잖아.”


물론 서른 하나에 결혼이라는 사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삼일 이상 술을 마셨고, 대부분 우리집에서였다. 나이 많은 후배 하나가 부산에서 올라와 일주일을 함께 보낸 적이 있는데(그때는 일주일 내내 마셨다), 그 후배는 그렇게 일주일만에 우리집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소식 두절 상태이다. 그렇다고 술만 마신 건 아니었고, 조그마한 회사라는 이유로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덕분에 불필요하게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렸던 것도 같다. 오십여곳이 넘는 관련 회사들과 연락을 해야 했고, 백여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과 씨름을 해야 했으므로 집에 오면 묶여 있던 샅바를 풀어놓고 마음껏 술을 마셨다. 주로 언제나 차가운 것으로...


“... 차가운 정종에는 눈처럼 차가운 것, 꽃처럼 차가운 것, 바람처럼 차가운 것이 있고, 따뜻한 정종에는 양지처럼 따뜻한 것, 사람 체온처럼 따뜻한 것, 미지근한 것, 적당히 따뜻한 것, 뜨거운 것, 아주 뜨거운 것 등이 있다고 한다.”


별다른 취미는 없었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일은 꽤 즐겼다. 커피를 마시기는 했지만 애호의 정도는 아니었고, 술을 마시되 주종을 가리지 않았으며, 각 주류의 연원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책을 읽는 일이 지치면 소설을 써볼까 끄적였고, 영화를 보는 일이 지겨우면 우리집을 영화하는 친구들에게 세트로 빌려주었고, 음악을 듣는 일이 지겨우면 가사 쓰는 일을 부업으로 삼는 동생 친구에게 가명을 지어주고는 했다. 모든 것을 탐닉하는 듯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도 중독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어느 한 가지에 중독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중독되는 법이야.”


주변에는 항상 많은 친구들이 들끓었고, 그 친구들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 여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오히려 부담이 덜어지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함께 사는 동생의 친구들까지 들락거리니 당시의 우리집은 오픈하우스 중인 기숙사를 닮아 있었다. 도무지 누가 언제 오고 누가 어떻게 나가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는 기숙사 같은 곳에서 나는 결국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도대체 부끄러움은 모르고 살아가면서도, 외로움은 자가 생산할 수 있을 정도였던 ‘서른 하나의 나’는 어쩌면 토끼 남자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토끼 남자? ... 네가 예전에 말했잖아.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고. 요즘 그런 남자들 많거든. 다정하게 대해주는 여자가 옆에 없으면 외로워서 견딜 수 없는 남자들...”


좋아하는 작가인 야마모토 후미오의 이번 책은 서른 하나의 나이를 가진 나에 대한 서른 하나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로 채워진 엽편 소설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로 회사 생활과 연애에 집중되어 있는 (뭐 서른 하나라는 나이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아주 동떨어져 있지도 않다. 게다가 이야기들을 읽는 중간, 우연처럼 ‘서른 하나의 나’를(비록 성별은 다르지만)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아직 서른 하나가 되지 않는 나라면 혹시 미래의 ‘서른 하나의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모든 에피소드가 완벽하고 풍성한 것은 아니지만, 서른 하나의 그들을 혹은 서른 하나의 나를 읽는 재미가 나쁘지는 않다.



야마모토 후미오 / 이선희 역 / 내 나이 서른 하나 (ファㅡスト·プライオリティㅡ) / 창해 / 294쪽 / 20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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