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이 된 선과 악, 유일한 인간의 상실...
“지난 3,500년간 문명화된 세계 전체를 통틀어 평화로웠던 기간은 230년에 불과했다는 거 아세요?”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정말 그럴 것도 같다. 지구라는 땅 덩어리의(뭐 바다에서도) 어딘가에서는, 때로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들먹이며 때로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무수한 싸움이 지속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명분의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모든 싸움에서 가장 무참해지는 것은 바로 인간이고 인류가 될 터이다.
소설에는 지난 세기와 금세기에 가장 명성이 높은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두 가지의 사건이 등장한다. 하나는 1945년 2월 14일, 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에 의한 ‘드레스덴 폭격’이고, 또 하나는 2001년 9월 11일에 있었던 알 카에다에 의한 ‘911 테러’이다. 50여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있는 두 사건은 소설 속의 주인공인 아홉 살 소녀 오스카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 ‘상실’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 속에서 절묘하게 연결된다.
『... 아빠가 말했다. “우리는 존재하니까 존재하는 거야.” “그게 대체 뭐예요?” “이 우주와는 다른 어떤 종류의 우주도 있을 수는 있지. 하지만 생겨난 것은 지금의 이 우주야.”』
소년 오스카는 얼마 전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오스카와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오스카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에 답을 주던 아버지가 사라진 지금, 모든 것에 대한 의문만이 남았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가졌던 호기심은 세상에 대한 의문으로 바뀌고 오스카는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납득할 수 없어 자꾸만 무거워지는 중이다.
“... 그때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유리 파편 속에 무선 인터넷 카드만 한 조그만 봉투가 있었다. 대체 뭐지? 봉투를 열어보니 속에 열쇠가 들어 있었다. 뭐지, 대체 뭐야? 기묘하게 생긴 열쇠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버지의 상자에서 발견한 열쇠 하나가 등장한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열쇠 하나와 그 열쇠가 들어있던 봉투에 적힌 ‘블랙’(아마도 누군가의 이름에 붙는 성(姓)일)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어린 나이에는 힘에 부칠법한 여행을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해야하고,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달래야 하는 오스카에게, 소설은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이해시키는 대신 그와는 무관해 보이는 열쇠를 주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아버지를 다시금 상기시키도록 돕는다. 하지만,
“육 개월이 넘도록 찾아다녔는데, 육 개월 전에 비해 더 알아낸 것이 한 가지도 없어요. 실제로는 오히려 아는 게 줄어들었어요. 마르셀 선생님의 프랑스어 수업을 죄다 빼먹었으니까요... 게다가 여러 사람들을 귀찮게 굴었죠... 그뿐인가요, 지금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아빠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되는 게 목적이었는데도 말이에요.”
오스카에게 이 작업은 힘에 부치기만 하다.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너무나도 많고 어린 오스카에게 이 모든 사람들과 면담을 하고, 아버지의 열쇠가 꼭 들어맞을 자물쇠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엄마를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면서(물론 이 거짓말들이 거짓말들이 아니게 되기는 하지만) 뉴욕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지만 오스카에게 큰 수확이 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오스카의 뉴욕을 떠도는 공간의 여정이 계속되는 동안 소설에서는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하는 시간의 여정 또한 삽입된다. 드레스덴 폭격으로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여자 애나를 잃은 (자신의 목소리와 함께...) 그는 애나의 여동생과 함께 뉴욕에 둥지를 틀고 오스카의 아버지를 낳았지만, 결국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던 그 자리로 떠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생을 이어갔다.
『... 그러던 어느 날, 침대 옆 테이블의 먼지를 털면서 그녀가 말했어, “당신이 떠난 건 용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돌아온 건 용서할 수 없어요.”』
그리고 911테러로 목숨을 잃은 아들의 장례식이 있던 날 오스카의 할머니, 자신의 아내의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오스카의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온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스카에게 세입자, 라고 말하며 자신의 남편을 숨기고, 그는 그림자처럼 집안을 배회할 뿐이다.
『“난 아들을 잃었단다.” “정말요?” “어떻게 죽었는데요?” “죽기 전에 잃어버렸단다.” “어떻게요?” “내가 떠나 버렸거든.” “왜요?” “두려워서.” “뭐가 두려웠는데요?” “그를 잃을까 봐 두려웠어.” “아드님이 죽을까 봐 두려웠어여?” “그가 살아 있는 것이 두려웠어.” “어째서요?” “삶은 죽음보다 더 무시무시하니까.”』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어린 오스카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관을 꺼낼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자신의 아들의 빈 관을 눈앞에 둔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이 썼지만 아들에게 보내지 못했던 편지들을 넣는다. 드디어 오십여 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를 둔 두 개의 사건, 혹은 그 사건의 가장 명확한 피해자 두 사람은 명쾌하게 조우하고 그들은 이제 조그만 안식을 얻게 된다.
드레스덴 폭격과 911테러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면서, 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지만 가장 잔혹한 결과를 가져온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남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것에 또한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그렇다.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하니?” “그것이 진실이니까요. 아빠는 진실을 사랑하셨어요.” “무슨 진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거요.”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을 앞에 두고 나누는 오스카와 오스카의 할아버지의 대화처럼 ‘엄청나게 시끄러운’ 사건의 진실은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명분의 싸움도 인간에게 상실감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역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 민음사 / 2006 (2005)
ps1. 얼마전 읽은 『사랑의 역사』의 저자 니콜 크라우스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부부지간이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두 사람의 작품 모두 천재적이라고 할 만큼 뛰어나다.
ps2. 책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만 대충 적었지만 실제로 책의 형식적인 측면도 무척 흥미롭다. 소설의 진행과 연관되어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되는 몇 개의 페이지들, 중간중간 등장하는 굵은 글씨들(좀더 자세히 읽는다면 그 굵은 글씨들의 연결고리를 알아챌 수 있을까...), 붉은 펜으로 교정이 된 페이지들, 그리고 띄어쓰기가 무시된 채 진행되는 페이지들까지... 기존의 소설책에서 볼 수 없던 형식들이 많이 등장한다.
ps3. 드레스덴 폭격이 등장하는 또 다른 소설로는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 있는데, 이 소설 또한 포스트 모던한 형식을 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존의 정통적인 소설로는 다룰 수 없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무시된 듯한 끔찍한 사건이라는 사실(이것은 911 테러도 마찬가지일터)이 이러한 소설 형식을 야기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