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작가의 현란한 문장에 기어이 무릎을 꿇다...

by 우주에부는바람

마루야마 겐지를 읽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고지식한 듯하지만 한없이 자유로운 사유의 폭은 간혹 부럽지만 대부분 넘기 어려운 벽만 같다. 소설가라기보다는 구도자에 가까운 (실제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에게 느끼는 경외감이랄까... 융숭깊고 사색 만연한 철학적 문장들과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 빈틈없이 빼곡하게 부여하는 한자어의 상념들은 자칫 독자를 혼절의 상태로까지 끌어들이고 만다.


바람이며 돌, 동물과 식물은 물론 인공의 구조물에게까지 자신의 사유를 전염시키는 작가가 이번에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백주 대낮의 긴지’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야쿠자이다. 아주 빠르게 조직의 중간 보스에 오른 그는 상대 조직의 보스를 살해하고, 그러한 자신을 질책하는 자신의 조직의 보스까지 살해한 후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어느 바닷가,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마토코에게 전쟁중 전파탑으로 쓰이던 곳을 은신처로 제공받아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느 야쿠자와는 다르다.


“야구를 좋아하던 소년이 프로야구 선수가 되듯, 낚시질 좋아하던 아이가 어부가 되듯, 그리고 책벌레가 학자가 되듯 그저 자신의 천성을 따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암흑가에 발을 들였을 뿐이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집안에서 지극히 모범적인 성장 과정을 거쳤으면서도 긴지는 삶과 죽음이 순간순간 약동하는 암흑 세계에 자진하여 몸을 던졌다...”


단순한 악이나 단순한 선이 아니라 절대악이나 절대선처럼 별도의 체험없이 선체험된 혹은 타고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야쿠자의 길로 들어섰고, 그것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으며, 지금 이렇게 도망자의 신세가 된 연후에도 아무런 후회를 하지 않는다.


“긴지가 세상과 담을 쌓은 것은 새로운 비약을 위해서일 뿐 그밖에 다른 이유는 없다. 긴지는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기 반성의 말을 입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꿈에도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본 적이 없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추태를 보인 적도 없다.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긴지는 그랫다... 긴지의 본령은 철저한 반역에 있다.”


그러한 그이지만 이제 천연의 요새와 같은 전파탑에 과거 자신의 똘마니였던 남자 마토코, 그의 말못하는 아내, 그리고 그의 다섯 살배기 딸 하루코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으로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구멍 뚫린 나무토막으로 보일 따름인 가면과 말씨름을 해야 하는가 하면, 세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목숨이니 자신을 따라 죽음으로 가자는 저승사자와 맞서야 한다.


“인간의 목숨을 빼앗은 데 대해 변명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해두겠다. 이 세상에서는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지상(地上)의 선(善)이다. 이 세상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다. 타자의 살해는 종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힘의 상징이다.”


“어떤 아침에도 긴지는 세월의 축적을 느끼지 않는다. 찰나와 미래에만 관심이 있는 긴지에게 유한(遺恨)이란 없다. 앞으로의 삶에 교훈이 될 말을 이리저리 뒤적여보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긴지는 조각룡이라는 자와 함께 가장 위대한 문신을 새기려고 한다.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조각룡을 만난 이후 긴지는 그에게서 받은 느낌만을 믿고 자신의 등에 무지개를 새기기로 한다. 조각룡 또한 긴지가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문신을 새길 작정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곱 가지의 색을 하나하나 자신의 등에 새기는 동안 긴지는 밀입국 여인, 노인 부부, 순경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에 연루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번민의 늪에 한 발자욱씩 빠져든다.


“일곱 가지 색깔 하나하나가 제각기 한없는 악덕의 매혹을 내뿜고, 또한 어떤 심판도 면할 수 있는 광채를 발휘하며 긴지의 앞길을 확실하게 비춰준다... 수많은 악으로부터 탄생한 지적인 소산... 자기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일 순수한 아름다움... 반역의 극채색으로 점철된 끝없는 격정...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있는 영혼의 비상... 평화를 분탕질하는 모독의 광휘... 장관을 연출한 이 무지개는 쫓기는 신세의 일개 야쿠자가 자기 위안을 위해 내건 간판 따위의 건방진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 긴지의 등에 무지개 문신을 조각했던 조각룡의 죽음에 이어 자신의 도망에 등불 같았던(하지만 결국 긴지에게서 강하게 내뿜어지는 힘에 의해 서서히 망가져야만했던) 마토코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긴지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건 가면과 저승사자, 긴지의 또다른 자아이기도 한 이들은 이제 마지막 길에 다다른 긴지에게 말한다.


“너는 인간 중의 인간이다.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다. 경의를 표해야 할 특별한 인간이다. 절대로 신의 실패작이 아니다. 너라는 사내는 야만적인 격정의 무진장한 보고(寶庫)다. 너는 폭력의 위력을 마음껏 행사하기 위해, 단지 그것만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태어난대로 살았던 긴지, 긴지는 이제 자신의 등에 있는 무지개, 그 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먹빛에 의해 세상에 흩뿌린 자신의, 자신만의 색을 거우어가며 사위어간다.


“달빛과 습도의 미묘한 조건이 맞물려 태어난 그 장관은 부드러운 색조이되 결코 희미하지 않다. 한낮의 무지개 못지 않게 선명하고, 각각의 색깔들이 독특한 광채를 내뿜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색깔만은 실제 무지개와 다르다... 보랏빛이 아니라 먹빛이다. 한 부분에 불과하던 그 먹빛이 점차 다른 여섯 가지 색깔을 침식해 들어간다. 마침내 무지개 전체를 뒤덮는다. 마침내 시커먼 무지개가 되는 순간 무지개는 어둠에 녹아들고 밤에 뒤섞여 고요히 소멸한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긴지의 목숨도 끝난다....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던 자. 배덕자의 전형이었으되 결코 장난으로 살지는 않았던 ‘백주 대낮의 긴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꽤 두꺼운 분량에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 읽고 나면 혼절의 느낌에 빠져들만하다. 삐끗, 어느 순간 작가의 요설에 현혹되어 무릎 꿇고 마는 영혼을 구제할 것은 ‘장난으로 살지 않겠다’는 허언의 약속 뿐이다. 그마저도 입 달싹 하는 동안 무지개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릴 듯하지만 말이다...



마루야마 겐지 / 양윤옥 역 /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 虹よ, 冒瀆の虹よ, 전2권) / 1권 373쪽, 2권 382쪽 / 문학동네 / 2004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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