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진행형일 때만 의미있는 법...
사랑을 하면 마음이 불에 덴 것처럼 홧홧, 하다고들 한다. 물론 그 홧홧함은 꼬치 튀기는 기름이 손등에 튄 것처럼, 침대 모서리에 새끼 발가락을 찧었을 때처럼 찌이이이이잉 여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평생 생채기가 남아 다시는 꼬치를 먹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는 것도 아니요, 새끼 발가락을 볼 때마다 침대 옆에 또다른 이부자리를 펼치고 몸을 눕히는 치밀함을 보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아차 이거 튀김 솥에 너무 가깝게 간 것 같다, 혹은 우씨 하마터면 또 침대 모서리에 부딪칠 뻔했다, 간혹 불안해하거나 간혹 안도할 따름이다. 사랑은 그렇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수요일 밤이었고, 토요일 오후에 그녀에게 함께 지내겠냐고 물었고, 일요일엔 내 아파트에 꽃이 꽂혔다. 스테레오에서는 여자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와다. 모든 게 사랑스러웠다.”
시애틀에서 가수가 되고자 뉴욕으로 온 사라와 단역 배우로 몇 차례의 영화 출연이 전부인 윌리엄은 혹은 윌리엄만,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사랑의 회오리에 도로시마냥 휩쓸린다. 하지만 그렇게 불쑥 어딘가 다른 공간에 다다른 것만 같은 윌리엄은 마치 사라를 다른 공간에서 튀어나온 듯한 도로시마냥 사랑한다. 얼마전 3년 동안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은 경력이 있는 사라는 결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더불어 쉽사리 몸도 열지 않아 윌리엄을 애태운다) 그리고 무언가 불길한 징조처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났던 프랑스 여행 후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텅빈 공간이 드러난다.
“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가 언성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그녀가 팔을 내 입 안에 쑤셔 넣어 뱃속 깊숙이 있는 내장을 목구멍을 끄집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 이 젠장맞을 거리 한복판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싶었다... 닷새 후면 난 스물한 살이 된다...”
스물한 살 남자의 순정은, 아니 스물한 살 남자의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이제 칭얼거림으로 바뀐다. 이별을 선언한 여자의 창 앞에서 세레나데를 외치고, 그녀의 자동응답기에 구구절절 시시콜콜 이야기를 늘어놓고, 과거의 여자를 만나 괜스레 퉁박을 듣는다. 사랑은 종종 사랑이 끝난 뒤에 더욱 분명해지고, 그 분명함이 집착으로 변질되며, 변질된 사랑이 부패하고, 그 악취가 가실 즈음이 되어서야 주변에 눈을 돌리고 사태를 서서히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윌리엄의 조력자는 그의 엄마다.
『“... 내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요? 난 진심으로 엄마의 조언을 구했다. 넌 너를 싫어하는 사람을 더 존경하지.” 엄마가 말했다...』
이른 결혼으로 윌리엄을 낳았고, 곧 남편과 헤어졌고 아직 젊고 남자 친구를 만나는 이에 열심인 엄마이지만 어쨌던 윌리엄을 가장 잘 아는 지구에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존재니까...
『... 가볍게 신발을 털며 엄마가 말했다. “때로는 윌리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 때로 우리가 가진 거라곤 우리의 결심밖에 없는 수가 있거든.” 엄마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엄마 고등학교 3학년 때 암살당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역사 선생님이 그에 대해 신랄하게 한마디 했다. 엄마는 책을 덮고 가방을 집어 들고는 앞으로 걸어 나가서 “당신 때문에 토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날로 학교를 떠나 아버지가 대학을 다니던 휴스턴으로 갔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난 엄마의 그런 점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 윌리엄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는 사라를 찾아가 자신의 홧홧했던 마음, 그토록 뜨거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행보를 한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기란 어렵다. 포옹이든 악수든 다 바보처럼 보이는 것 같아 그녀 볼에 키스를 했다. 그녀의 피부는 보드라웠다. 한순간 그녀의 냄새와 감촉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기억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과거에 저 홀로 남겨지는 법이 없다, 우리들의 도움 없이... 그러니 사랑은 진행형일 때만 의미 있는 법이다. 그때문에 아플 때 충분히 아파하는 것이 좋다. 그토록 뜨겁지 않다면 또 기름이 튀어야 하고, 그토록 찌이이이잉 하지 않으면 또 침대 모서리에 발가락 찧는 법이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 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뜨거워야 한다. 온전히 박제되고 다시는 살아날 수 없도록...
에단 호크 / 오득주 역 / 이토록 뜨거운 순간 (Tht hottest state) / 미디어2.0 / 2005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