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강하게 유혹하는 아멜리 노통의 탐미관...
사실 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는 않아,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뭐 소설이 한가할 때 느긋하게 읽어야만 하는 무엇인 것은 또 아니니까... 최근에 읽었던 아멜리 노통의 두 권의 소설이 조금 실망을 주어 읽을까 말까, 시간도 없는데 중얼중얼 망설이며 집어 들었는데 이런, 재밌잖아... 아,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부득이하게도 감상의 중간중간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혹여 책을 사서 볼 작정이라면 이쯤에서 글읽기를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태반은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두근두근 책장을 넘기는데 있으니 말이다. 등장인물인 하젤은 자신의 얼굴의 실체를 알게 될까 계속 모른 채 있게 될까, 하젤을 외딴 섬 얼굴 비추이는 물건을 절대 반입할 수 있는 그곳에 가둔 선장 롱쿠르는 정말 악한 인간일까 그저 사랑에 빠진 늙은이에 불과할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간호사 프랑수아즈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얽히고 설킨 두 사람의 관계를 관통할까 하는 문제로 바짝 긴장하여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야말로 이번 아멜리 노통의 소설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엔 하젤 앙글레라는 스물 셋의 처녀가 있다.
“비록 짧긴 하지만 제 삶은 실추의 연속이었어요. 열두 살 때까지 전 뉴욕의 어린 공주 하젤 앙글레였죠. 1912년,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고 말았어요. 우린 얼마 안 되는 남은 것을 챙겨 대서양을 건넜죠. 아빠는 바르샤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자 했어요. 하지만 머지 않아 그에게 남은 건 허름한 농장 하나뿐이었죠. 그래서 엄마가 파리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어요. 그곳에 가면 생활이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파리로 돌아온 엄마는 세탁부 이외의 일자리는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아빠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죠. 그리고 1914년, 내 가엾은 부모님은 비록 파산은 했어도 미국에 그냥 남아 있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역사적 감각이 얼마나 부족했던지. 그들은 결국 미국으로 되돌아갈 결심을 했어요. 1918년 말이에요! 우린 이번에는 짐수레를 타고 세르부르로 향했어요. 인적이 거의 없는 길 위에서 우린 폭격의 훌륭한 표적이 됐죠. 전 들것 위에서 고아가 되어 깨어났어요.”
이후 롱쿠르 선장을 만나 그의 섬에 들어앉게 된 하젤은 선장의 전폭적인 사랑(양아버지처럼 굴면서 동시에 육체적 관계도 맺고 있는)을 받으며, 폭격으로 인해 흉측해진(혹은 흉측해졌다고 믿고 있는)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볼 수 없도록 안전하게 보호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 하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뭍으로부터 간호사 프랑수아즈가 투입되고 그녀는 하젤에게 반해(약간의 동성애적 느낌이 동반된) 선장 롱쿠르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 현실은 당신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요. 관계에 응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해 아주 열렬한 뭔가를 느낄 수 있어요……. 몸을 역겨워하면서도 영혼에 매료되어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그 몸을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고요.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나요?”
하지만 프랑수아즈에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도(밤에 자신과 육체적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드는 선장이 죽도록 싫다며) 때때로 선장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으로 프랑수아즈를 당혹스럽게 하고, 결국 수은을 모아 하젤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려던 음모가 탄로나 하젤과 마찬가지로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알고 있소, 내 잘못도 있었지. 당신은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소. 그것은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병이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가 없소. 특히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때에는.”
그리고 프랑수아즈는 틈틈이 선장과 함께 하젤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으로 갈등을 키워가며, 하젤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과 섬을 탈출하는 일에 골몰하고 결국은 절반의 성공을 이룬다.
프랑수아즈가 하젤에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 했던 수은과 철자가 같은 전령의 신 ‘머큐리’로 제목을 삼은 소설은 70대 노인과 10대 소녀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가려진 진실과 개봉된 이후 그 진실의 반전에 대한 이야기이며, 외딴 섬을 배경으로 한 세 사람의 단조로우면서도 존재론적인 현대적으로 변용된 신화인 듯도 하고, 아름다움의 효용에 대한 성찰의 기록으로도 손색없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칭송받아 마땅한 덕목은 “걸작의 고유한 특성은 각 독자가 저자가 된다는 데 있어요. 당신은 책으로 하여금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죠...” 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처럼 독자들을 저자의 반열로 밀어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소설의 다음 장을 머리 속으로 써내려가도록 만드는 힘에 있다. 소설의 끝에 다다르도록 한 순간도 긴장의 끈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 노련한 에너지가 부럽다.
아멜리 노통브 / 이상해 역 / 머큐리 (Mercure) / 열린책들 / 192쪽 / 2005 (1998)
ps1. 소설을 읽는 도중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름다움을 훔치다』가 떠올랐다. 『머큐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둘러싼 진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하젤과 『아름다움을 훔치다』에서 밀폐된 방에 갇혀 빨리 돌아가는 시계와 함께 그 아름다움마저 빨리 늙도록 만들어버린 여자가 얼핏 겹쳐진 탓이다.
ps2. 사실 소설 속의 하젤이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에 처음엔 조금 실망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정도는 소설을 읽는 동안 하젤만큼이나 순진하게 망각해버리게 되기도 한다.
ps3. 위의 언급된 내용 이외에도 책에는 또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으나 그것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영화를 보고 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엔딩 크레딧 이후의 또다른 영상과 같은 것이라는 것 정도만 살짝 귀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