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에 잠식되어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 적...
책의 시작은 이렇다.
“1993년 1월 9일 토요일 아침, 장클로드 로망이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동안, 나는 아내와 함께 큰아들 가브리엘의 유치원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다섯 살인 가브리엘은 장클로드 로망의 아들 앙투안 로망과 같은 나이였다. 그런 다음 나는 가족과 함께 부모님 댁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고, 로망 역시 자기 부모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으러 갔고, 로망 역시 자기 부모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은 후에 부모를 살해했다...”
이 부분이 책의 시작이기는 한데 소설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런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의 본명인 엠마누엘 카레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가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는 한 남자의 평생에 걸친 거짓과 자신이 일구어낸 거짓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사건 또한 실화이다. 그러니까 소설이라는 허구에, 실재하는 소설가와 실재하는 사건이 등장한 셈... 이 소설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거짓과 그로 인한 살인 사건과 살인 사건 이후에도 자신의 거짓을 거짓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피폐한 살인자이기도 하지만 거짓과 진실 혹은 허구와 실재가 서로를 유린하는 일종의 아이러니에 있을 수도 있다.
“그는 진실하다고 인정받는 일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자신도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 두려워한다. 전에는 자기가 하는 말을 모두 믿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진실에 다가서지 않고 있으며, 그 진실을 정신과 의사와 판사와 미디어가 디밀어 준 해석의 도움을 받아 가며 재구성하고 있다... 심각한 위험성이 우려되는 우울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가 좀 덜 체계적인 방어, 좀 더 애매하지만 진실성이 담긴 방어에 다가서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신의 두 아이와 부인을 살해하고, 곧바로 자신의 부모를 방문하여 그들을 살해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기 집에 불을 질러 자살을 감행한(하지만 성공하려 했는지가 의심스러운) 장클로드 로망... 의과대학 2학년 시절 진급을 위한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이후 스스로를 의사로 포장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연구원으로 포장한 채 주변 사람들에게 선하고 신망받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꾸몄던 장클로드 로망... 그러니까 이제 모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 감옥에 갇힌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에 스스로를 개입시키고 싶어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조차 객관적인 어떤 상황에 논리를 부여하듯 재구성한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거짓말쟁이가 스스로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찾아올 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그의 뺨에 눈물을 흘리게 할 때, 그것은 여전히 그를 속이고 있는 적이 아닌가?”
책의 마지막은 스스로가 등장인물이 되어 소설을 끌어가던 작가 엠마누엘 카레르가 종교계 자원봉사자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으며, 신앙간증류의 활동을 하고 있는 장클로드 로망을 향해 답을 알 길이 없는 의혹을 보내는 것으로 장식되고 있다. 그는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거짓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거짓에 잠식되어 이제 더 이상 진실에 다가설 어떤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하게 된 것일까...
“<적>이라는 제목은 종교적인 질문을 해결하고자 우연히 읽게 된 성서에서 비롯되었다. 악마를 규정하는 최종적인 의미는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적>은 물론 장클로드 로망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평생 <적>과 대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나 역시 <적>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종교적이 아닌 심리적 차원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안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 엠마누엘 카레르
소설이 모두 끝나고 옮긴이의 말에 엠마누엘 카레르가 말하는 <적>(L'Adversaire)의 의미가 나온다. 사실 우리 모두는 아니 나는 가끔 내 안에 이는 <적>의 존재를 느낀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엠마누엘 카레르는 위의 말 이후에 이렇게 덧붙였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적>이 어떤 사람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었고, 또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엠마뉘엘 카레르 / 윤정임 역 / 적 (L'Adversaire) / 열린책들 / 220쪽 / 2005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