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인 상황을 아우르는 대중적인 문체의 힘...
간혹 이런 상상은 어떨까? 만약 내가 지금의 아버지가 아니라 재벌 총수인 아버지를 두었다면? 아니 이건 너무 오버다. 만약 내가 이십대 초반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이건 너무 싱겁고... 여하튼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인가 내가 만약 전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러한 선택의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휘재의 인생극장이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를 생각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단순히 두 개의 인생, 두 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생각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두 개의 인생, 두 개의 상황에 각각 존재하는 두 명의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서로와 대면한다.
양재 학원을 거쳐 의류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스물 셋의 소코는 자주 가는 술집의 주방장인 가와미와 연애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가와미보다 조건이 좋은 남자 사자키가 나타나면서 소코는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고향에 함께 내려가자는 프로포즈 앞에서 소코는 사자키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소코는 잘 나가는 직장인인 사자키의 아내, 사자키 소코가 되었지만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사자키가 벌어오는 돈도 충분하고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고 어리광을 부리기는 하지만 불륜 상대인 남자도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사자키에게는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와 지금도 만나고 있다.
지금 그녀가 사자키와 헤어지지 않는 것은 사자키의 경제력과 이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애인과의 여행 도중 우연히 들르게 된 후쿠오카, 가와미의 고향인 그곳에서 애인과 헤어져 홀로 지내며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한다. 여기까지는 소코 A이다.
그렇다면 만약 스물 셋의 소코가 사자키가 아닌 가와미를 선택한다면? 그래서 탄생한 것이 소코 B이다. 소코 A, 사자키 소코는 후쿠오카에서 가와미와 결혼하여 그의 고향으로 내려온 소코 B와 만난다. 소코 A와 소코 B는 스물 셋이 될 때까지의 모든 기억은 공유하고 있지만 가와미의 프로포즈를 받는 시점에서 둘로 갈라진다.
소코 A는 사자키를 선택하여 도쿄에 남았고, 소코 B는 가와미를 선택하여 그와 함께 후쿠오카로 귀향을 했다. 물론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지... 라고 여겨지기는 해도 섬뜩한 호기심은 불가피하다.
“당신이 믿든 안 믿든 도플갱어는 존재한다. 도플갱어는 현실과 사후 세계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방황하는 것이다. 도플갱어는 아주 본능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다른 실체처럼 존재하고 싶어서, 본체와 서로 자유를 즐기려고도 하며 방어하려고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소설은 대중적인 야마모토 후미오의 다양한 스킬이 골고루 배어있다. 연애 소설인가 하면 추리 소설로 스리슬쩍 넘어가고, 추리 소설인가 하면 심리 소설로 용케 빠져나가고, 심리 소설인가 하면 느닷없이 교훈을 늘어놓다가, 또 잠시 공포 소설의 외양을 띠기도 한다. 여하튼 초현실적인 상황을 대중적인 문체에 잘도 버무려 부지불식간에 대중 소설로 만들어 놓는 재주는 꽤 비상하다고 인정...
야마모토 후미오 / 구혜영 역 / 블루 혹은 블루 (Blue Moshikuwa Blua) / 대교베텔스만 / 272쪽 / 2004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