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주제라도 꼼짝마, 영화로 풀어가는 소설...
「고양이의 사생활」. ‘아저씨 나랑 같이 죽을 수 있어?’라는 문구에 매료되어 고양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 아이와 알고 지내게 된 나, 그리고 개를 키우는 아내. “죽는 순간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부끄러운 줄 알라는 고양이의 비난...” 하지만 고양이와 나와의 관계는 사실 프로그램 내부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의 무미건조함과 게임의 긴장감... 현실인가 게임인가의 선택... 그리고 게임 속의 상황은 사생활이 될 수 있을까?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믿거나 믿지 않을 뿐이다... 요컨대 문제는 존재가 아니라 태도이다.” 존재의 무의미성은 아버지라는 사내가 내게 말한 바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인생은 도박과 같아. 한 판의 게임인 게지. 게임에선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단 말이야.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뜻이야. 게임에서의 본질적인 승리자는 게임 그 자체인 거야. 아무도 게임에서 승리자가 될 순 없어. 아무도.”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인생’일 뿐이다. 이러한 난해한 주제를 서술하기 위해 작가는 드라마 속의 장미와 드라마 밖의 실재하는 장미, 그리고 이러한 장미를 살해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현실과 드라마의 중첩은 책을 읽는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데에 충분하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또한 현실과 드라마의 경계를 구분짓는 데에 적이 헷갈려 하니 말이다.
「만리장성 너머 붉은 여인숙」. 중국집 만리장선 너머 붉은 여인숙의 사람들. 103호 남자와 104호 남자의 이야기. 자신의 살인담을 이야기하는 103호 남자와 잠수교에서 갈고리로 비닐봉지 속 사체를 건졌다는 104호 남자. 그리고 101호에 모여 판을 벌이는 동네 남자들과 이들에게 능욕당한 소녀. 우울하고 가슴 갈라지는 상징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이 소설을 쓴 인간에게 103호 남자가 보낸 이메일의 내용이다. 우리는 그러니 이 내용을 거짓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거미의 계략」. ‘자기애와 자기학대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인간’이라는 구절에 붉은 줄 쫘악... 남 이야기 같지가 않다. 소설의 내용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죽은 김주은이라는 소설가. 그런데 그는 왜 죽었을까? 주민등록증의 분실과 이로 인해 소설가가 겪은 금전적 재앙. 하지만 이것이 그의 죽음을 설명할 수는 있을 지언정 마스크를 쓰고 죽은 이유를 밝히지는 못한다. 그는 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자살한 것일까? 뒤이어 나타나는 나의 사생활. 이성민이라는 약혼녀와 한영서라는 첫사랑 사이의 갈등. 하지만 이 또한 자살의 한 원인일 수는 있을 지언정 마스크를 쓰고 죽은 이유를 해명해주지는 않는다. 그의 죽음 자체가 하나의 계략인가? 물음에 물음을 더할 뿐 속시원한 것은 없다.
「Insert Coin」. 홈리스 취재에 나선 내가 그 현장에서 만난 인물. 갈라진 틈을 메우고 싶어하여 동전을 잔뜩 가지고 다니면서 자판기에 동전을 밀어 넣던 인물. 유혹, 내기, 거북 그리고 성기의 벌어진 틈에 500원짜리 동전이 들어 있던 여자의 사체.
「토니와 사이다」. 자살, 자살을 돕는 일을 하는 사내, 토니와 사이다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살 예정자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레밍이라는 게임... 자살에 대한 무표정의 서술. 왜 죽어야 하는 가에 대한 또는 왜 죽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는 어떤 죽음, 어떤 자살에 대한 건조한 기록.
「우리가 정말 달에 갔던 것일까」. 암스트롱의 달 착륙이 조작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돈 적이 있다. 거기에 아직까지도 스튜디오에서 달 착륙 장면을 찍다가 엔지가 나는 순간을 기록한 필름은 인터넷에 동영상으로도 떠돈다. 그러니까 소설의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 하지만 소설의 내용은 한 동네에 서너 대의 TV만 존재하던 시절인 1970년대, 주인공이 살던 동네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던 붉은원숭이라는 별명의 한 사내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모든 진실이 은폐되던 1970년대라는 시기에 그 진실에 접근한 것으로 보이던 붉은원숭이, 그리고 그 붉은원숭이가 TV보기를 말렸던 사연 등을 미루어 짐작하라는 언질의 소설.
「늑대인간」. 늑대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 외모일까? 아니면 난폭한 행동? 그것도 아니면 그 숨겨진 본성? 아마도 세 번째가 정답에 가까울 것. 소설은 대학 문학회 시절 늑대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합평회 시간마다 상대방의 작품을 물어뜯는 그 녀석, 그리고 그 녀석에게 L을 빼앗겼지만 결국 L과 결혼했던 C에 대한 이야기. 포커페이스라고 했던가? 자신의 본모습을 완전하게 감추고 또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란 과연 가능할까...
「순정아 사랑해」. 검사인 장과 잘나가는 학원강사인 박, 아내 덕분에 빌딩 다섯 채를 소유한 재산가가 된 안. 이들은 지방 소도시의 친구인 태식의 결혼식을 향해 뭉쳤다. 물론 이들이 태식의 절친한 친구라서 가는 것은 아니다. 태식의 청첩장에 쓰인 순정이라는 이름이 자신들이 학창시절 그렇게 목맸던 그녀인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 틈에 벌어지는 우여곡절.
「토성에 관해 갈릴레이가 은폐한 몇 가지 사실들」. 친구인 H의 연인이었던 Q. 그리고 군대를 간 친구를 대신하여 Q를 돌보다가 결국 Q와 깊은 관계까지 가게 된 나. 하지만 H와 그녀를 내기로 걸면서 벌였던 포커판에서의 승리 또는 참혹한 패배, 그리고 사라져버린 Q. 8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아내와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Q. 하지만 Q는 5년 전에 죽었다. 토성에 관해 갈릴레이가 은폐한 몇 가지 사실들이란 일종의 암호화. 삶에도 그렇게 암호화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은폐하고 싶은 사건 사고들이 있을 터. 바로 그 사건사고에 관한 소설이 아닐까.
「선인장」. 매우 건조한 곳에서도 아주 소량의 물만으로 버티며 자신을 연명하는 선인장. 결혼한지 10년이 넘도록 아직 아이가 없는 부부. 그들이 행운이라고 여기며 거처로 정하게 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하지만 그 아파트는 내게 점점 이상하게 느껴진다. 건조하고 더운 느낌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아파트. 결국 나를 삼켜버린 아파트 이야기.
「미림아트 시네마」. 제목은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이었는데 파일을 뒤져도 검색이 되지 않아 의아해하기를 십여분. 알고보니 이 소설은 문학동네라는 계간지에서 작가들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한 편씩 받아 챙기는 자전 소설이었음이 생각난다. 그리고 가끔 그 자전소설들의 정리는 스리슬쩍 넘어갔으니 검색이 되지 않았던 것.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저자는 신림 사거리에서 관악산 방면으로 들어오다 시흥 쪽으로 나가는 갈림길, 그 분기점 귀퉁이 건물 지하에 있던 미림극장(삼류극장으로 보통 에로물과 액션물 두 개를 한꺼번에 틀던, 그래서 미림아트 시네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을 중심으로 한 서울대 앞의 거리들에서 보낸 시간들, 그리고 더욱 과거로 돌아가 영화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들... 그러니까 자신의 겪어온 시절을 띄엄띄엄, 촘촘하지는 않지만 애정을 가지고 기록한 짧은 자전소설이다.
김경욱 /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 문학과지성사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