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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외 《2025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모호하면서도 명확한 그런 것들의 차이와 차별로 이루어진 세상...

by 우주에부는바람

문학사상사에서 다산북스로 이상문학상의 주관사가 넘어가고 첫 번째 수상집이 나왔다. 수상작은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이다. 대상 수상작을 비롯해 우수상 수상작들도 작품과 관련한 대담을 함께 실었다. 최근 작품들의 수상자들의 대다수가 여성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집의 수상자 비율은 남성이 높았다. 그리고 수상자들 중 신춘문예 당선 이력을 넣은 작가는 서장원 뿐이었다. 신춘문예를 통하지 않고 문단에 나왔거나 신춘문예 당선 이력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일텐데, 변화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는지...


예소연 「그 개와 혁명」

“... 그러니까, 나 같은 요즘 애들은 똑딱 핀을 만들면서 무언가를 도모할 거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뜻이라는 게 있었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뜻, 의지, 그런 것들. 비록 미적지근할지언정, 중요한 건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p.31) 85학번 운동권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켰던 딸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보여주는 당돌한 모습이 재미있다. 소설 속 나의 아버지와 비슷한 세대인 독자가 보기에도 그렇다. NL과 PD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우리끼리 우물 안의) 거대 담론이 삽시간에 스러진 다음, 쏜살같이 세상은 변했지만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무 담론이 없지는 않을 터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뜻, 의지’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언제나 있었고 나중에도 그럴 것이다. 그럴 것, 이라고 믿고 싶다.


예소연 「마음 깊은 숨」

“사람씩이나 돼서 로봇 돌보는 거 부끄럽지 않아요?” (p.51) 소설 속의 세계는 인건비보다 ‘안드로이드 대여비’가 저렴해진 이후의 세상이다. 나는 거기서 ‘인간에 대해 오랜 돌봄 노동을 거친 안드로이드는 비로소 인간에게 돌봄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현재로 치자면 인간을 위해 헌신한 퇴역 경찰견이나 군견을 돌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내가 돌보고 있는 요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잊고자 하였던 나의 언니에 대한 기억이 반전으로 얽히는 소설이다.


김기태 「일렉트릭 픽션」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문을 열고 출근했고 퇴근 후 귀가하여 문을 닫았다. 삶이란 이미 뭉쳐버린 반죽 같아서 이것과 저것으로 분해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진짜 삶이라 부를 만한 것은 문 안에 있다고 느꼈다. 문밖의 일은 문 안의 삶을 위하여 수행하는, 견디는 무엇이었다...” (pp.116~117) 그는 문밖에서 최대한 희미하게 살았다. 아마도 자의반타의반 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그가 문 안에서 기타를 치기로 하였다가 그것을 그만둔다. 그리고 디어 문밖의 누군가와 마주치게 될 것 같다.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엉뚱하게도 순간 나는 오래전 학교 운동장에서 겪었더너 일을 떠올렸고, 그제야 피터가 롤렉스를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잏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p.161) 외고 출신이지만 같은 출신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나와 피터 사이에는 어떤 벽이 있었고 그것은 뉴욕에서 마주친 지금도 여전하다. 예전이라면 이것을 정확히 계급적 차이라고 불렀겠지만 지금은 모호하다. 여하튼 그런 것이 있고, 그런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데 롤렉스 시계가 한몫한다. 소설의 마지막 순간 드러나는 반전은 그래서 모호하지만 명확하게 다가온다.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트랜스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 읽은 것 같다. 키가 작은 남자인 직장 상사 오스틴의 ‘키 크는 수술’(소설을 읽다 검색을 하였고 실제하는 수술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과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이란 성정체성을 고착해야 하는 나의 수술이 소설을 읽는 동안 비교하고 만다. 소설은 그보다는 이 모든 정체의 사람들이 그 정체만큼이나 저절로 가지기를 바라는 프라이드를 향하고 있지만...


정기현 「슬픈 마음 있는 사람」

“... 기은은 자신이 비로소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된 것에 아늑함을 느끼면서도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된 덕분에 슬픔 속에 한참을 머물다 자리를 떴다.” (p.246)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찬송가의 제목이란 사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거여동이라는 동네, 그곳의 벽에 낙서된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되는 문구에 더욱 집중하고 읽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와 거여동이 그리 멀지 않았다.


최민우 「구아나」

도윤과 해영은 3년째 동거 중이다. 해영은 의류 회사에 출퇴근을 하고 도영은 집에서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일을 한다. 해영의 집에서는 도영을 탐탁해 하지 않는데 어느 날 해영의 오빠 해준이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는다. 해영은 해준을 맞이하기 위해 집을 수선하려 하고 도영과 조금 부딪친다. 두 사람을 방문한 해준은 그곳에서 자신의 이민 계획을 알리며 양주 한 병을 남긴 채 떠나고, 두 사람은 그 비싼 양주를 마신다. 독자인 나는 다른 무엇보다 오빠 해준이 이민을 가면서 부모와 함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눈에 확 띄었다. (소설에서는 그저 한 문장으로 지나갈 뿐이고, 해영 또한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예소연, 김기태, 문지혁, 서장원, 정기현, 최민우 / 2025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다산책방 / 321쪽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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