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사랑 혹은 신과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파울로 코엘료의 전작들을 재밌게 읽었던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연금술사』에 이어 세 번째로 집어 든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다. 하지만 선뜻 책의 대체적인 내용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저 이 두 문장에 깊게 밑줄 그었을 뿐이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사랑은 그 자리에 있어요. 변하는 것은 사람들이죠.”
다른 이들보다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듯하다. 사랑의 구설수에 오르내린 경험이 많기도 하거니와 사랑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난 보통 이렇게 말한다.
난 사랑을 믿지 않아, 사랑은 이제 저자거리의 좌판들마다 빠뜨리지 않고 구비하고 있는 싸구려 물건과 다르지 않아, 자기가 고른 물건이 가장 좋은 것이다고 생각하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다들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지, 라고 말이다.
소설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남자와 여자가 성인이 되어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직 제대로 성징이 발현되기 전의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조금쯤 좋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친한 동네 친구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신학교를 다니다 휴학한 채 기적을 행하는 성직자가 되어 있다.
그리고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을 권유한다. 처음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가 의심하던 여자도 점점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선택해야 한다. 성직자의 길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길 중에서 말이다.
결국 남자는 자신에게 기적의 힘을 준 여신(신의 여성성을 극대화시킨 여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치밀하게 알지 못하므로 언급하기가 힘들다)에게 다시금 그 힘을 돌려준다.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남자를 사랑하고 동시에 그 남자가 여신으로부터 받은 기적의 은사마저도 사랑한다.
여하튼 소설은 남녀의 사랑과 신과 인간의 사랑(내지는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겹쳐 놓고 있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대신 두 가지는 다른 속성의 것이 아니고 어느 하나로 인해 다른 하나가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일상의 사랑은 그저 답답하고 중독성 강하며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고 누구든 한번쯤은 가져 보았고 누구나 한번쯤은 잃어 본 삶의 다양한 품목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자신이 지금 추구하는 사랑은 다르가도 말하면서 언급한 과거의 이 사랑에 대한 단정에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나도 알아. 난 사랑을 해봤어. 그건 마약과도 같아. 처음엔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 하지만 다음날이면 그보다 더 많은 걸 바라게 돼. 여기가지는 아직 중독 상태라고 할 수 없어. 그 감정을 즐기는 정도지. 여전히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야. 처음에는 이 분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고, 세 시간 동안 잊고 있지. 하지만 차츰 그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 세 시간 생각하고 이 분 동안 잊는 거야. 곁에 없으면 마약 중독자처럼 불안해지지. 그래서 중독자들처럼 필요한 약을 얻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스스로를 굴욕감에 빠지게 만드는 행동을 하게 돼.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게 되는 거야.”
파울로 코엘료 / 이수은 역 /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 문학동네 / 293쪽 / 2003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