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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츠키 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극우는 민주주의를 먹고 자라는...

by 우주에부는바람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나는, 유통되는 정치 관련 뉴스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공중파의 정규 뉴스와 뉴스 전문 채널은 어떻게든 외면하고 지나쳤다. 라디오로는 사람의 말소리조차 듣는 것이 싫어 클래식 채널인 93.1만을 듣고 살았다. 치밀어오르는 염오의 감정을 숨기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런대로 살만해졌다.


그러다가 지난 해 12월 3일, 윤석열 본인에 의한, 자학에 가까운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두어 시간 쉬지 않고 책을 읽을 작정이었는데, 단톡방에 올라온 계엄 소식으로 한 시간여만에 독서는 중단되었다. TV에서는 비현실적인 계엄 소식이 리플레이 되고 있었고, 연이어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MBC와 JTBC와 YTN을 오가며 뉴스를 시청했다. 혹시 몰라 TV조선과 채널A까지 살폈다. 계엄 해제를 확인했지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첫 번째 여의도 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 응원봉을 들고 지하도 벽에 기대어 선 이들을 발견했다. 아내는 집회에 참석하려는 어린 여성들인 것 아닌가 호기심을 발휘하였고, 나는 이런 날 여의도 근처에 아이돌 콘서트가 있나 어처구니 없어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의 집회 참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아내로부터 지금까지 지청구를 듣고 있고, 윤석열은 두 번의 여의도 집회 이후 탄핵되었다.


탄핵은 우리를 한시름 놓게 하였지만 그것이 또다른 지옥문을 열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탄핵 이후 우리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던 극우 세력의 실체를 확인하였다. 그들은 자학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탄핵당한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거리를 메웠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 의원들 대부분이 이들 극우의 편에 섰다는 사실이었다. 거리의 그들 중 일부는 법원을 때려부쉈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테러를 당한 법원, 사법부의 또다른 일원인 판사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판결을 통해 구치소에서 내란 재판과 탄핵 인용을 기다리던 윤석열을 풀어줬다. 윤석열은 결국 헌법 재판소 재판관들의 만장일치 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지만, 손을 흔들고 크게 웃으며 사저로 돌아갔다. 친위 쿠데타의 실패 이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다 이기고 돌아왔다, 라고 큰소리쳤다.


윤석열의 파면 이후 대선일이 6월 3일로 정해졌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민주당의 유력후보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전례에 없는 속도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그리고 오늘 고등법원이 파기환송심의 재판 기일을 대선 이후로 연기하였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수뇌부와 한덕수를 비롯한 행정부 수뇌부, 그리고 친윤 의원들이 합심하여 만든 작품에 흠집이 났다.


대선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다. 책에는 잠재적 독재자를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이 등장하는데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기존 정치권이 외부에서 유입된 ‘잠재적 독재자’에게 권좌를 내어 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우리에게는 이미 들이닥친 일이다. 물론 이 책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트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섰고, 세계는 지금 관세 전쟁으로 혼돈 지경이다.


아래에 책에서 발췌한 몇몇 부분을 적어 놓기로 한다. 솔직히 말하면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허약함에 진저리가 나는 하루하루를 보냈고 아직 보내고 있다. 이번의 고비를 넘겼다고 해도 이미 드러난 극우 세력이 형해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라고 했는데 전세계의 극우 세력은 그 민주주의를 피를 빨아 먹으며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어떤 장치는 정말 없는 것일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히틀러나 무솔리니, 차베스 모두 흡사한 여정을 거쳐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 모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술이 있었을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이 경고신호를 무시하고 권력을 쉽게 넘겨주거나(히틀러나 무솔리니) 혹은 정치 무대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었기(차베스) 때문에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p.27)


“우리는 린츠의 연구를 기반으로 잠재적인 독재자를 구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를 개발했다. 우리는 1)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3)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4)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정치인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p.31)


“... 정치판이 세계관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으로 배타적인 진영으로 분열될 때 그 사회는 관용의 규범을 유지하기 힘들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갈등은 민주주의에 무해하고, 때로는 꼭 필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정치집단이 서로 간 공존이 불가능한 이념으로 분열될 때, 특히 구성원끼리 교류가 부족하고 고립이 심해질 때 정상적인 정당 경쟁이 사라지고 적대적인 투쟁이 시작된다. 상호 관용이 사라지면서 정치인들은 자제의 규범까지 저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한다. 상황이 이러한 국면으로 접어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p.148)


“... 민주당 하원 의원 바니 프랭크는 깅리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 정치를 서로 뜻이 달라도 상대의 선의를 믿는 정치에서, 뜻이 다른 이들을 악하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정치로 바꾸어놓았다. 말하자면 그는 성공한 메카시주의자다.” (p.190)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허물어지는 과정 이면에는 당파적 양극화가 있었다. 비록 시작은 공화당의 급진화였지만, 지금의 양극화는 미국 정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 의회의 인질극, 10년 중반의 선거구 조정, 그리고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 대한 논의 거부는 단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민주당과 공화당은 경쟁 관계를 넘어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또한 각 정당의 지지자들은 인종, 종교, 지역은 물론 심지어 “삶의 방식”을 기준으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놀라운 설문 조사 결과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1960년에 정치학자들은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자녀가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물었다. 이에대해 민주당 지지자 중 4퍼센트,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들 중 5퍼센트가 “언짢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2010년에 실시한 똑같은 설문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33퍼센트,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 49퍼센트가 “다소, 혹은 상당히 불쾌할 것”이라고 답했다...』 (p.211)


“뉴트 깅리치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양극화된 사회에서 경쟁자를 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쓸모가 있으며, 정치를 전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 많은 걸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을 향해 더욱 거세지는 공격은(완전히는 아니라고 해도 대부분 공화당 인사들에 의한)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쟁으로부터 미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켜주었던 연성 가드레일을 흔들고 있다...” (p.219)


“1993년 뉴욕의 민주당 사원 의원이자 전직 사회학자였던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에 대처하는 인간의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통찰력 있는 주장을 했다. 모이니핸의 설명에 따르면 불문율에 대한 위반이 계속해서 일어날 때 사회는 ‘일탈의 범위를 축소하는’, 다시 말해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정상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pp.251~252)


“... 닉슨 행정부 이후로 (1기)트럼프 행정부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멀어져 있다. 또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다. 대통령이 언론을 공격하고, 상대 후보를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지킬 여력이 없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잠재적 독재자들은 더 많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2016년 이전에 전 세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저 미신에 불과했다 해도, 트럼프의 등장과 유럽의 위기, 중국의 성장, 그리고 높아지는 러시아의 호전성이 그 미신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p.261)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 박세연 역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How Democracies Die) / 어크로스 / 350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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