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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츠키 외《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지배하려고 할 때...

by 우주에부는바람

지난 해 12월 3일 비상 계엄 선포로 촉발된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육 개월이 지난 오늘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있는 중이다. 원래대로라면 여섯 시에 투표가 마감될 것이었지만 보궐 선거로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은 여덟 시에 투표가 마감된다. 그러니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발표도 여덟 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사전 투표를 한 아내와 나는 오전의 운동을 하고 돌아온 다음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낮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느리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미묘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확실하게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암살자에게는 언제나 공범이 있다. 그 공범은 민주주의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이다. 린츠는 이들을 가리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적이고 확고하게 거부하는 데 반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즉,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다...” (pp.63~64)


친위 쿠데타를 획책한 윤석열에게 8명 전원 만장일치의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는 임기를 마친 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인 김장하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김장하 선생은 물었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꽃이라 그러는데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김장하의 어린 장학생이었던 문형배는 대답했다. “요란한 소수를 설득하고 다수의 뜻을 세워나가는 지도자가 나타날 거라고 저는 생각한다. 그런 체제가 가능한 게 저는 민주주의라 생각하고 이번에 탄핵도 그런 연장선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일부 영역을 다수결주의의 범위 너머에 놓아두는 작업이 중요한 것처럼 그 밖의 다른 영역은 ‘다수결주의의 범위 안에’ 그대로 남아 있도록 만드는 작업 역시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보다 상위의 개념이지만, 다수의 지배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두 가지 영역만큼은 다수결주의 안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선거, 그리고 의회의 의사 결정을 말한다. 첫째, 누가 공직을 차지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은 자가 더 적은 표를 얻은 자를 이겨야 한다... 둘째, 선거에서 이긴 자가 통치해야 한다...” (p.210)


두 어른(김장하와 문형배)의 기사가 나올 무렵, 마침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었다. 책은 2018년 트럼프의 집권1기에 맞추어 나왔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작가들이 트럼프의 집권2기가 시작될 줄을 모르고 쓴 책이다. 미국의 선거 방식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짚어보고, 바로 그 선거 방식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문제점을 두루 지적하고 있다.


“... 민주당은 주 차원의 선거에서 종종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일부 선거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반면 공화당은 접전을 벌이는 선거구에서 승리하기 때문에, 공화당은 전체적으로 더 적은 표를 가지고서도 의회 다수를 차지할 수 있다... 주 의회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형태로 선거구를 구획할 수 있다. 가령 경쟁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몇몇 선거구에 집중적으로 몰아넣고 나머지는 다른 대다수 선거구에 골고루 분포시키는 방식으로 선거구를 구획함으로써 경쟁 정당의 표를 희석시킬 수 있다. 그런 경우에 경쟁 정당은 몇몇 선거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선거구에서는 패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게리맨더링이다...” (pp.262~263)


예를 들어 미국의 선거 방식은 직접 선거와 간접 선거의 방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유권자들은 일반 투표를 통해 각 주의 선거인단을 뽑고, 이 선거인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 제도의 결과로 민주당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의 숫자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종종 공화당의 후보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넘겨 주어야만 한다. 엘 고어가 그랬고 힐러리 클린턴이 그랬다.


“한때 민주주의 개척자이자 다른 나라의 모범이었던 미국은 이제 민주주의 세상에서 느림보가 되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이전에 만들어진 제도를 허물어뜨리는 동안에 미국은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21세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여전히 반다수결주의 민주주의 사회로 남았다. 다음을 생각해보자...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권자가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다. ‘선거 다수의 의지에 반해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강력한 상원을 기반으로 양원제를 유지하는 소수의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다. 그리고 강력한 상원이 ‘불평등한 주들을 평등하게 대표하는’ 심각하게 불균형한 훨씬 더 소수의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이다... 미국은 대법원 판사의 종신제를 유지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다...” (pp.313~314)


이와 함께 인구수와는 상관없이 각 주에 할당된 상원 의원, 그리고 종신제로 운영되는 대법원, 게리맨더링으로 왜곡된 선거구 그리고 부러 어렵게 만들어 놓은 투표 방식 등을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로 꼽고 있다. 전작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비하여 조금 지루하지만 여전히 귀담아 들을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여기까지 썼는데도 아직 출구조사 발표까지 한 시간 가량이 남았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 박세연 역 /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Tyranny of the Minority) / 어크로스 / 439쪽 / 20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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