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9시간전

장석주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석연치 않은 삶의 주도권을 내게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좋은 체질을 물려 받았다, 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항상 몸의 어느 구석엔가 술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살았다. 한 삼 일 금주를 하고 빈속에 소주를 마셨더니 액체가 지나가는 몸속의 자리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래도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일 없었으니, 사십대 중반까지는 거의 매일 마실 수 있었으니 좋은 체질을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사는 것, 그게 내 방식의 삶이다. 하루의 보람은 사과 한 알 먹는 거, 세 시간 이상 햇볕을 쬐며 걷는 거, 8시간 정도 읽고 쓰는 거, 심심함 속에 머무는 거 따위다. 그리고 이타적 생각을 하며 살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되기를 실천해야 삶이 온전해진다...” (p.33)


  서른 중반 이후 꾸준히 수영을 하고 나서는 좀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특히 코감기에 약하여 환절기마다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감기에 걸린다고 해도 스쳐 지나는 정도이다. 비강 세척이라고 하여 콧속의 빈 공간을 세척하는 것으로 코 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는데, 수영의 호흡법이 바로 이 비강 세척과 닮았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물려받은 좋은 체질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먹고 마시며 일하고 잠자는데, 이것은 몸을 쓰며 사는 사람의 일이며 생명의 본분이다. 몸 쓰는 일을 중단하면 사람은 죽는다. 먹기, 잠, 일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세 요소다. 이것들을 기쁨으로 누리며 충만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p.92)


  그래도 완벽하게 감기를 막지는 못한다. 일 년에 두어 차례 들어오는 듯하다가 빠져나가는 감기가 있고, 또 두어 차례는 실제로 감기에 걸린다. 이번 주말 감기에 걸린 몸을 추스르느라 이틀 동안 집에서 잠자코 있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걸쳐 편도선이 부었고 토요일 오전에는 코를 풀어내야 했다. 약국에서 두 종류의 약을 받았고, 두 알씩 네 알을 하루 세 차례 먹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삶의 안쪽에는 다양한 무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이 만든 무늬다. 나는 매화, 모란, 작약을 좋아한다. 나는 가을의 달, 바다, 대숲, 사막, 황무지를 사랑하고, 학교, 병원, 감옥, 군대 막사, 공장 들을 싫어한다. 나는 바닷가, 서리 내린 들판,고대 유적지, 절들, 섬, 항구,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를 좋아한다. 햇빛, 의자, 대나무, 정원, 숲길, 제주도, 거문고 소리,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를 좋아한다.” (p.167)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다음에는 몸을 휘감는 약기운을 느끼며 잠시 시들었다. 자고 일어나 다시 밥을 먹기 전의 시간 동안에 책을 읽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제목처럼 책에는 단순한 삶이라는 지향점을 향하고 있는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득하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안성의 한 호숫가에 거처를 정하여 생활하던 시기에 썼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글들이 다수 실려 있다.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은 새벽에 깨어나 마당을 쓰는 늙은 어머니들이다. 반면에 밀실에서 군인들을 증강시키고 군수물자와 무기들을 늘려 비축하는 회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들은 그 구실로 평화를 내세우지만, 그 증강의 본질은 더도 덜도 아닌 ‘전쟁’이다. 세상은 ‘적란운과 별똥별과 오솔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단것과 뇌물과 회의’에 빠진 사람들로 나눌 수가 있다. 앞서의 사람들이 지구 자원을 사랑하는 착한 생태주의자들이라면, 뒤의 사람들은 지구 자원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려는 사람들이다. 뒤의 사람들 때문에 지구는 유례없는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문제는 뒤의 사람들이 자꾸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자연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지구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지구는 큰일났다!“...』 (p.217)


  단순한 삶을 말하기는 쉽지만 단순한 삶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트랜드는 감기처럼 반짝 유행하였다가 다시 잠복기에 접어들기를 반복한다. 내가 온전히 내 뜻대로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인지 가늠해 볼 때마다 석연치 않다. 탐미주의자는 아닐지언정 아름다움의 실현이나 실현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다. 해가 바뀌면 원하지 않아도 새로운 한 해를 이렇게 저렇게 희망하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아름답고 싶다, 단순하여서...



장석주 /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 문학세계사 / 221쪽 / 2016 (2016)

매거진의 이전글 김영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