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H. 쿡 《붉은 낙엽》

이중의 가족 서사로 풀어내는 탁월한 미스터리를 의심하지 말라...

by 우주에부는바람

근래에 읽은 책을 통틀어 단연 몰입감 최고의 소설이었다. 물론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붉은 낙엽》을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옭아매야 할 것이냐는 의문이 따른다. 내용과 형식, 심리 묘사와 스토리 전개는 적절한 파격 안으로 독자를 끌어 당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하던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서를 멈출 수 없다.


“침대로 돌아왔지만 잠은 완전히 달아났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기분이었다. 사물의 본성에 내재한 무엇인가가 암암리에 내게 적대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내 오랜 확신을 약화시키는 느낌. 마치 집의 튼튼한 기초 아래의 땅속 어딘가에서 미세한 떨림이 생겨난 듯했다.” (p.32)


소설은 철저하게 주인공인 나, 에릭 무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초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라는 현재의 상태에서도 나는 어떤 ‘떨림’을 감지하고 이는 곧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표면화된다. 나의 아들 키이스가 그날 맡아 주었던 어린 에이미가 다음 날 아침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키이스는 에이미의 실종과 자신은 관계가 없음을 주장하지만 아버지인 나부터 마음 속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다.


“아마 당신이 키이스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걸 거예요. 아니, 당신이 키이스를 사랑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키이스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게 사람들이 가족에게 하는 행동이죠. 안 그래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는 게 사람이에요.” (p.192)


소설은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아내 메러디스 그리고 아들 키이스라는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거의 나를 중심으로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여동생 제니, 이후 교통 사고로 사망한 엄마, 현재 요양원에서 늙어가고 있는 아버지라는 가족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가족에는 나와 나의 형인 워렌이 있고, 나는 자긍심이 없는 형 워렌과 자신의 아들 키이스를 자꾸 겹쳐서 보고 있다.


“메러디스가 입은 가운의 얕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폰의 윤곽이 언뜻 보였다. 그것을 보며 당장 진실을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한 말, 형이 내게 한 말, 키이스가 말한 것들, 이제 모두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메러디스와 키이스가 죽었거나 살아 있는 나의 다른 가족들, 다시 말해 워렌과 아버지, 어머니, 제니와 함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가족사진처럼 잃어버린 집의 계단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중에 미소 짓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265)


현재에 벌어진 에이미의 실종 사건과 과거 내 여동생과 엄마의 죽음을 작가는 촘촘히 엮고 있다. 과거의 죽음들이 현재의 사건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사건으로부터 발생한 나의 의심은 과거 죽음의 실체를 확인하는 트리거가 되고 있다. 소설은 이처럼 현재와 과거를 무척이나 교묘한 방식으로 연결시킨다. 이 심리적 박진감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힘을 빼지 않는다.


“너는 워렌, 메러디스, 키이스를 생각한다. 네가 짧은 시간 유지했고, 그리고 의심했고, 결국 잃어버린 가족을 생각한다. 너의 집을 마지막으로 훑어봤던 일이 떠오른다. 진입로로부터 현관으로 이어지던 구불구불한 보도, 튼튼한 그릴, 아주 오래전 네가 심고 아꼈던 일본단풍나무가 떠오른다. 그 마지막 날 너는 그 나무 아래 땅을 바라본 적 있다. 너무나 심한 좌절을 겪고, 크고 작은 의심에 하도 심하게 시달린 탓에, 너는 벌거벗은 그 나뭇가지 밑에 보이는 것이 피가 고인 웅덩이인지, 아니면 그냥 흩어져 있는 붉은 낙엽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p.344)


진실은 정말 필요할 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상처와 함께 드러나는 진실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나? 우리는 진실에 취약한가 아니면 의심에 취약한가. 완벽하다고 여기는 순간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일상이 있고, 그것은 사소한 의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데, 그 의심의 근원은 거짓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은, 깊은 소설을 읽었다.


토마스 H. 쿡 Thomas H. cook / 장은재 역 / 붉은 낙엽 (Red Leaves) / 고려원북스 / 351쪽 / 20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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