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며 애매하고 모호하지만 뭔가 쓰고 싶다는 충동 속으로...
일반적인 범주에서 어느 하나의 영역에 위치시키기 힘든 소설들이 소설집에 가득하다. 소설들을 관통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이 사회의 하류 인물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주 약물에 취한 상태라는 점이다. 아예 소설집이 시작되기에 앞서 루 리드의 곡 ‘헤로인’의 가사 일부가 등장한다. “그 황홀한 기운이 밀려들면 내가 예수의 아들이 된 기분이야. (When I’m rushing on my run And I feel just like JESUS’ SON)”
“... 세일즈맨이 내게 먹인 약은 혈관 안쪽을 할퀴는 듯했다. 턱이 아팠다. 나는 모든 빗방울들의 이름을 알았다. 나는 모든 일을 일어나기 전에 예감했다. 나는 올즈모빌 한 대가 속도를 늦추기도 전에 그게 내 앞에 서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 안에 탄 가족들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는 우리가 이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겪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p.23,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 중)
책에 실린 첫 번째 소설은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인데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의 제목은 해당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한다. 다만 위의 발췌 부분에서 ‘모든 빗방울들의 이름을 알았다’라는 표현과 맞닥뜨렸을 때 파리 리뷰 단편 선집인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다른, 2021년)를 떠올렸다. 세기를 대표하는 선집의 제목에 이 표현이 사용되었고, 그만큼 시적인 표현이었는데, 그것이 약물에 취한 상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였다.
“우리는 작고 지저분한 아파트에 살았다. 내가 오랫동안 정신을 잃었고 하마터면 영원히 떠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우리의 작은 집이 싸구려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듯했다. 죽지 않아서 너무도 기뻤다. 나는 삶의 의미 같은 걸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지만, 어쩌다 그런 고민을 했을 때조차 기껏 다다른 결론은 내가 어떤 장난질의 희생양이 틀림없다는 거였다. 나는 신비는커녕 그 근처에도 간 적이 없었고, 우리 중 누구도, 어쩌면 나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가운데 누구도 허파나 가슴 어딘가가 광명으로 가득 채워지는 일은 겪어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잠시나마 은총을 느꼈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pp.65~66, 〈보석保釋〉 중)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약물에 취해 있는 걸 보면서 비트 세대의 문학을 떠올리게 되며 동시에 그들이 범죄에 취약한 하류층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는 더티 리얼리즘을 연상케도 된다. 여기에 이들이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며 현저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비이성적 인물이라는 사실은 고딕적이다. 그럼에도 데니스 존슨의 인물들이 이 틀에 고스란히 얽매이지 않는 것은, 이들 모두가 작은 희망의 구멍에 눈을 바짝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외상실을 막 들여다본 그의 눈에 들어온 상황은 이랬다. 얼굴에 칼이 꽂힌 환자와 약에 취한 채로 나란히 서서 환자를 내려다보는 간호조무사 조지와 실습생, 그러니까 나.
“저 중에 뭐가 진짜 문젤까?” 그가 말했다.』 (p.99, 〈응급실〉 중)
소설들은 등장 인물들의 비이성적인 상태만큼이나 혼란스럽다. 간혹 위와 같은 위트가, 소설 속의 나는 전혀 위트라고 생각하지 있지 않지만, 등장하여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실려 있는 소설들을 읽는 것이 마냥 즐겁게 다가서지만은 않을 것 같다. 21세기 여기에서 20세기의 저기를 이해하는 일은 심정적으로 쉽지 않다. 막연하며 애매하고 모호하다. 다만 그 방식으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만든다.
“전날 밤 밸리 댄서는 나를 한 침대에서 자게 해 주었다. 함께 잤다기보다는 나란히 잤다. 그녀는 여자 대학생 셋과 함께 지내고 있었고, 그중 두 명에겐 대만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가짜 오빠는 바닥에서 잤다. 아침에 깼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말이 없었다. 그게 아쉬운 대로 그의 성공 비결이었다. 나는 여자애 한 명과 영어를 못하는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4달러를 주었다. 거의 내 전 재산이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먹을 대만식 전골 요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가짜 오빠가 이를 닦는 동안 창가에 서서 아파트 주차장을 내다보았다. 두 사람은 내 돈을 들고 녹색 세단에 올라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주차장을 나서기도 전에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 둔 채 서로를 붙잡고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사방으로 날렸다.” (p.149, 〈해피 아워〉 중)
책에는 「히치하이킹 도중에 일어난 사고」, 「두 남자」, 「보석」, 「던던」, 「일」, 「응급실」, 「더럽혀진 결혼」, 「다른 한 남자」, 「해피 아워」, 「시애틀 종합 병원에서 본 굳건한 손」, 「베벌리 요양 병원」이라는 열 한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헤로인, 을 찾아서 들었다. 함께 책을 읽던 아내가 집중을 방해한다며 음악을 꺼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얼른 그렇게 했다.
데니스 존슨 Denis Johnson / 박아람 역 / 예수의 아들 (JESUS’ SON: STORIES BY DENIS JOHNSON) / 기이프레스 / 200쪽 / 2025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