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가시권에...

by 우주에부는바람

젊어 무브먼트의 시절에 반전반핵가를 부르곤 했다. 반전반핵양키고홈, 이라는 구호로 마무리되는 노래다. 그런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내심 미국을 부러워했다. 그러니까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가능하다고 여겨진 언론의 자유와 같은 것들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옛말이 되었다. 엊그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자택이 FBI에 의해 압수수색 당했다. 논란과 반발이 있다고 하지만 예전과 같으면 아예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열흘 쯤 전에는 미국의 백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ICE(미국이민세관단속국) 요원 조너선 로스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녀는 중산층 백인 여성이었고, 불법 이민자도 아니었다. 그간 많은 불법적인 체포와 구금의 사례가 있었지만 그 대상이 백인 중산층이라는 사실이 질적으로 다른 충격을 주었을 터이다. 어쩌면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라고 뒷짐을 지던 이들에게 경고가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있었고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등을 휩쓸었다. 보수화된 현재의 미국을 전투적으로 다루는 영화이고 반이민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향하여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는 영화가 주요 부분의 상을 수상한 것이다. 영화 속 혁명 단체인 ‘프렌치 75’의 과격한 행동대장이 여성이고 이후 그녀의 딸인 윌라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의 의미 또한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로브에 상을 수상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그 누구도 르네 굿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몇몇 배우들이 르네 굿을 추모하는 ‘BE GOOD’ 배지를 달고 시상식에 참석했고, 마크 러팔로우는 “이것은 살해 당한 르네 굿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강간범, 소아성애 범죄자다. 그는 최악의 인간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 남자의 도덕성에 맡기고 있다. 미국은 정상이 아니다.“ 라는 말과 함께...



작년 말쯤 영화를 보았는데 꽤나 충격적이었다. 한물간 혁명의 정신으로 무장한 채 폭탄을 터뜨리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초현실적이라고나 할까. 시대가 특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좌익 혁명이 득세하던 과거의 어떤 시기를 다루고 있지는 않고, 오히려 현대이거나 근미래라고 보는 것이 맞는데, 지금 이 순간 (저런 행동이 아니라) 저런 정신이 가능할까, 라는 혼돈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민자를 돕는 무장 단체 ‘프렌치 75’의 폭탄 전문가 팰 캣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와 연인 관계가 되는 이 단체의 행동 대장인 여성 퍼피디아 베버리 힐스 (테야나 테일러), 흑인 여성 패티쉬를 감추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자 스티브 J. 록조 (숀 펜), 불법 체류자들의 은신과 탈출을 돕는 가라테 사범 세르히오 생카를로스 (베네치오 델 토로) 라는 캐릭터와 배우 라인업이 겹치면 더욱 그렇게 된다.



영화가 개봉되고 상영되는 동안 미국은 더욱 기이한 나라가 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트럼프는 노르웨이 총리에게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해 더 이상 평화를 생각하지 않겠 되었다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 편지를 썼다. 극우 인플루언서 제이크 랭은 르네 굿 사건의 현장이기도 한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지지 시위를 벌이다가 이를 반대하는 시위대에게 포위되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 극우 인플루언서를 구한 인물이 흑인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결국 아버지가 딸을 구하고 백인우월주의자는 결국 다른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지만 현실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가시권에 있다. 지구별의 우리들은 일상을 지배하는 초거대기업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극우의 지지를 받는 중2병 정치인에게 다스림을 받을 것인지의 선택에 직면한 것 같다. 다만 다행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 없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테야나 테일러, 레지나 홀 출연 / 162분 / 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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