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새벽》

영리하고 위계적인 인류가 자유 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과 함께...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 《새벽》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고 250년이 지난 시점이다. (책의 발간연도는 1987년이다. 아직 냉전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다.) 지구에는 이제 살아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달보다 좀 먼 곳의 궤도를 따라 지구를 돌고 있는 우주선에 ‘오안칼리’라고 불리우는 외계인들이 구한 인간들이 유기물과 같은 배의 형태를 가진 거대한 우주선에 봉인된 채로 존재할 뿐이다.


“... 우리는 당신들의 생필품과 식량을 스스로 생사할 때까지 수공구와 간단한 장비와 식량을 제공할 거예요. 치명적인 미생물에 대항할 수단은 이미 당신 몸속에 마련해 뒀어요. 그다음은 당신들 힘으로 헤쳐나가야 해요. 독을 지닌 동식물을 피해가며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드는 거죠.” (p.60)


외계인들은 이들 중 일부를 깨워 인간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인 릴리스는 오안칼리들부터 지구 귀환 첫 번째 팀의 리더로 선택받은 인물이다. 사실 릴리스는 유대 신화에서 하와 이전 아담과 함께 신에 의해 창조된 첫 번째 여성을 의미한다. 그전의 인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류로 선택된 첫 번째 인물이니 신화 속의 릴리스와 소설 속의 릴리스는 자연스럽게 겹친다.


“... 당신이 살던 지구는 지금도 당신의 지구이지만, 당신네 인간들이 애써 파괴하고 우리가 다시 애써 회복시키는 사이에 전과 다른 별이 돼버렸어요.” (p.62)


릴리스는 처음에는 촉수로 가득한 오안칼리를 두려워하거나 혐오한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지구 귀환이라는 임무 또한 달가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첫 번째 대면한 오안칼리인 스다야를 통해 두려움과 혐오를 조금씩 줄여가고, 또다른 오안칼리이자 울로이(울로이는 오안칼리 중에서도 색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다)인 니칸지와 함께 성장하며 자신의 역할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 당신들은 매혹적이에요. 당신들은 두려움과 아름다움의 희귀한 결합이거든요. 현실적으로 따지면 당신들이 우리를 사로잡았고, 우리는 당신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예요. 하지만 당신들은 육체의 구성 요쇼들과 작동 원리를 단순하게 결합한 것에 그치지 앟아요. 당신들 스스로의 개성과 문화가 곧 당신들이에요. 우리는 그런 것들에도 관심이 있어요. 당신들을 힘닿는 데까지 많이 구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p.274)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 오안칼리에 의해 릴리스는 이제 자신과 함께 지구로 돌아갈 인간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이를 소설에서는 ‘각성’이라고 부르는데, 릴리스는 이들의 서류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순서를 정하여 차례대로 각성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깨어난 인간들은 릴리스를 신뢰하지 못하고 외계인들에게는 적대적이다. 그리고 지구 귀환 연습을 위한 정착지 생활 과정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릴리스는 그런 오안칼리들을 부러워하며 지켜봤다. 감각 언어에는 거짓말하는 습관을 용인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에게 거짓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기껏해야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접촉을 거부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반면에 인간들은 거짓말을 쉽게, 또 자주 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외계인과 너무 가까워 보이는 사람, 또는 옷을 벗고 자신을 감금하는 자와 나란히 땅바닥에 눕는 사람은, 같은 인간일지라도 신뢰하지 못했다.” (p.424)


소설의 설정은 공포스럽지만 동시에 철학적이다. 인류는 오안칼리인에게 영리하지만 위계적이라고 평가받는다.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류의 구원자이고 동시에 새로운 인류의 창조자이기도 한 오안칼리의 행위에 수긍하기도 쉽지 않다. 그들은 마치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처럼 행동한다. 어쨌든 《새벽》은 시작에 불과하다. 《새벽》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제노제네시스(Xenogenesis)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일 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 Octavia E. Butler / 장성주 역 / 새벽 (Dawn) / 허블 / 455쪽 / 2025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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