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그때 그 시절 특이하였던 연애 소설의 신버전...

by 우주에부는바람

리뷰를 작성하면서 AI에게 한국 출판 한정으로 가장 긴 제목을 가진 단편 소설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혹시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인가 해서였는데 더 긴 소설을 알려줬다. 다만 그 소설을 쓴 이도 박상영이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동네 바보 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은밀한 취향을 저격하는 눈부신 육체를 가진 아찔한 육식남이었던 건에 대하여〉.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제제가 우리집에 살기로 했을 때 내가 말한 조건은 하나였다. / 하루에 한 번, 잠들기 전까지 웃긴 얘기를 해줄 것.” (p.11) 매우 부자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나보다 형이지만 나는 술을 살 때만 형 대접을 하였다. 현재는 나와 함께 살지만 제제의 아재 개그가 항상 웃기지는 않다. 술을 먹고 술김에 그 현장의 무언가를 훔치곤 한다.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소설은 아닌데, 오래전 휘발성 강한 특이가 점처럼 박혀 있던 이성애 연애 소설의 동성애 버전 같다. 재미있었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개를 잃어버린 소라와 내가 나온다. 제목에 나오는 패리스 힐튼이 개의 이름이다. 나와 소라는 연애 중이지만 관계는 그저 버석하다(라고 쓰고 보니 버석하다가 뭔데, 스스로 되묻게 되는데, 여튼 그렇다). 그리고 소라는 패리스 힐튼을 자신의 개라고 주장하지만 패리스 힐튼은 나의 집에 살았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패리스 힐튼을 찾지 못한다. 무엇을 찾는지 그 정체가 모호하다, 가 소설의 주제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패리스 힐튼이 빠진 소라의 이야기이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의 내가 김, 이라는 호칭으로 등장하는데, 일종의 목소리로만 나오는 인물 같은 존재이다. 대신 그 자리를 태혁이 차지한다. 태혁은 소라의 연하 불륜남(사실 소라가 김과 결혼을 한 상태는 아니지만)인데 지금 군복무 중이다. 여하튼 주인공인 박소라는 전직 피팅모델, 사회운동가, 영화감독였고, 현재는 서른둘, 파혼녀이며, “몸이 좋고 커야 할 것이 적당히 큰 군인의 #물주이자 #자살연습생. 말기 암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암수발녀. 조만간 #상주가 될 예정. 한때는 충실한 #약혼녀이자 #패리스 힐튼의 #반려인이었으나” (p.135) 지금은 그러니까 지금 바로 이 순간에는 무엇으로 명명을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단편이라기 보다는 중편에 가깝다. 나와 최종심을 다투다 영화제의 우수상을 수상한 오감독과 나의 관계가 한 축에 있고, 파병된 자이툰 부대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을 가진 나와 왕샤의 관계가 또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 오감독이 게이가 아니며, 유명세를 얻기 위해 P와의 동성애 루머를 은연중에 이용하고 있는 게 뻔하다는 사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오감독이 원래 그렇지. 세상에서 동성애를 가장 잘 이용하는 이성애자...” (p.173) 이것이 나와 오감독의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나와 왕샤의 관계를 잘 표현한 문장은 이렇다. “그렇게 우리는 술에 취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취해야 한다는 주사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다시금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성적 욕망이 갇힌, 맑고 투명한 관계로 남아 인생의 가장 고단한 시절을 함께 하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은 누구보다도 넓고 단단한 그의 등을 보며 나는 그 시절의 그와, 나아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p.211)


「조의 방」

특이한 콜걸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는 유나가 되기도 하고 바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배설물을 바라며 진짜의 나, 조의 방에 있던 나의 진짜를 요구하는 남자와 한바탕 육탄전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나는 봉인해 놓았던 그 시절의 우리를 꺼내려고 한다.


「햄릿 어떠세요?」

“곰곰과 키스를 한 것도 모자라 사귀기까지 한 것은, 너무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사귀자고 한 적도 없는데 곰곰은 키스를 하고 난 뒤로 당연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가만히 둔 걸 보면 나도 웃긴 구석이 있기는 했다. 아무튼 곰곰과 내가 완벽히 망한 연극을 완성하는 동안 나와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애들이 데뷔를 했다...” (p.256) 그러니까 소설은 오랜 연습생 생활 끝에 대학에 돌아와 늦깎이 대학생 노릇을 하던 나의 이야기이자 그러한 나와 미적지근한 연애를 했던 곰곰의 이야기이다.


「세라믹」

은주씨는 나의 엄마인데 성당에 다니고 술을 많이 마시고 재개발 사업을 촉구하는 시위를 나가며 (직접적인 장면 묘사는 없지만) 내게 폭력을 가한다. M은 특목고 시험을 앞둔 학생이며 종교적으로도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서도 은주씨와 대척점에 서 있는 공장 지대 거주자다. 나는 간혹 M을 찾아가고, M으로부터 받은 ‘구슬 모양의 작은 조각’인 세라믹을 입안에 문 채 은주씨가 없는 은주씨의 집으로 돌아온다.



박상영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문학동네 / 349쪽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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